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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Jan 13. 2019

담과 사람들 6

우리 딸이 교도관이 되고 싶대요. 

  

새해 첫 교육을 진행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내 책상위에 김00이라는 사람이 민원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메모가 있었습니다. ‘누구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새해 첫 근무일부터 무턱대고 찾아온 사람의 이름은 선뜻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되뇌이다보니 언뜻 의정부에서 미결수용동 담당할 때 부부입소로 들어왔던 그녀였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잘못되어 남편과 함께 입소하는 바람에 어린 딸을 보육시설에 맡기고 구속되었던...     

“너무 늦게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다른 데로 이송 갔다가 출소해서 자리 잡고나서 인사드리려고 하다 보니 지금에야 왔습니다. 출소해서 남의 집 식당에서 일하다가 이제 쪼그맣게 내 가게 갖고, 딸도 찾아왔습니다. 출소하자마자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맘같이 안되네요.” 알고보니 나를 찾기위해 의정부로 전화하니 승진해서 다른 데로 가셨다는데 출소자라서 직원들이 안 알려준 모양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교정본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며, 또 서울로 전화하니 그날은 휴가였고 1월 4일은 출근한다해서 무작정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하면 또 미루다 인사 못드리게 될 것 같아서 기어이 식당도 다른 사람에게 하루 맡기고 작정하고 나섰단다.

‘참...내가 뭐라고’

남편과 함께 어린 딸을 사회복지시설에 맡기고 들어와서 억장이 무너질 때 그때 도와주었단다. 그러고보니 그런 얘기를 들었던 기억, 딸아이가 있는 시설을 수소문했던 기억, 접견 오는 사람이 없어 종교단체 도움으로 영치금을 지원해줬던 기억이 났다. 이 정도는 누구나 어떤 교도관이나 하고 있는 일인데 유독 잊지 못하고 찾아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녀에게는 특별했었나 보다.    

돌아보니 그녀의 등 뒤에는 중학생쯤 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때 당시 사회복지시설에 맡기고 왔었던 그 딸이 지금 중2가 되었단다. 쭈뼛쭈뼛 거리는 딸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인사를 시키고난 후 그녀는 

“말씀 드려”

그래도 딸이 머뭇거리니 엄마가 대신 합니다. 

“우리 딸이 계장님처럼 교도관이 되고 싶대요.”

저는 가슴이 쿵 하고 울렸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잘 견뎌준 딸에게 제 명함 한 장을 쥐어주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하고 진짜로 교도관이 되고 싶을 때 다시 오라고. 우린 함께 따뜻한 국밥을 한그릇 먹고 헤어졌다.     

그녀는 그 해 5월엔 작은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맛있는거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그런 건 안된다고 해서요”

그 후 그녀의 딸은 심한 사춘기를 앓는다고 했다. 아마 유년기때 부모님과 떨어져 시설에서 받은 상처들 때문인 듯하여 상담센터와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딸은 많이 좋아졌고 고입을 준비한다고 했다. 며칠전 그녀는 또 전화했다. 딸이 과학고를 가는게 좋을지 외고를 가는게 좋을지 고민이라고.... 딸이 원하는 곳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러웠다. 그리고 몰랐다. 그 딸이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인줄은...그렇게 공부잘하는 아이가 판검사 대신 교도관이 되고싶다고 했다는게 감사했다.    

가끔 그녀는 전화를 한다. 아픈데 없는지..., 명절 잘 보내시라고..., 

내가 아는 출소자들은 자신들이 위로 받고 싶을 때 내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낸다.

겉으론 내 안부를 걱정하지만 사실은 흐트러지고 나약해져가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서 인 듯 하다.    

수많은 수용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들을 해왔었는지 더듬어 볼 일이다,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오랜 시간 몸에 축적된 반사적 행동일텐데 나는 매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나는 그녀에게 저런 과분한 인사를 받을 만큼 정성을 다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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