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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Aug 05. 2022

커피와 마음의 상관관계, 샬럿타운에서는 어떨까?

밍밍!

이곳에서 맛본 아메리카노의 첫 느낌이다. 티백 커피에 뜨거운 물을 잔뜩 넣어서 추출한 듯한 맛이었다. 다른 카페에서 두번째로 마셔본 아메리카노는 그렇지 않았다. 신맛이 살짝 나는 원두 커피였는데 무척 맛있었다. 나는 케냐와 예가체프처럼 산미가 있는 커피, 콜롬비아처럼 묵직하고 견과류향이 나는 커피, 수마트라와 브라질처럼 흙맛이 나는 커피 등등 다양한 커피 원두의 맛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쓴맛을 가장 사랑한다. 커피 맛의 기본은 쓴 맛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음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척 매력적인 맛이다.


커피의 쓴 맛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음료는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이다. 그중에서도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다. 그런데 이곳 캐나다 PEI 샬럿타운에서는 아메리카노 대신 코르따도를 선택했다. 아메리카노의 쓴 맛이 영 만족스럽지 않아서이다.


나에게 아메리카노라는 음료는 피곤함을 씻겨내는 마법같은 용도였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술 한잔을 하는 기분, 그 정서를 나는 커피로 느꼈다. 커피의 쓴 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 년여간 너무 단조롭고 너무 편안한, 그래서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래서 더는 쓰기만 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 것 같다.


한국의 집에서는 주로 네스프레소 버츄오 캡슐로 커피를 추출해서 마시곤 했다. 여름에도 핫 커피를 즐기던 나였지만, 이번 여름은 주로 아이스 커피를 마셨다. 핫보다는 아이스가 쓴 맛을 덜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얼음을 잔뜩 넣고 캡슐을 추출하면, 크레마는 쫀쫀해지고 맛은 연해져서 쓴 맛이 매력적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느날인가는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윽하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 생애 최고로 쓴 커피, 왜 이렇게 쓴 걸까, 이 원두가 이렇게 유별난 맛이 아니었는데. 구수함에 가까운 원두 캡슐을 추출한터라 더욱 당혹스러웠따. 그렇다, 나는 일상의 행복을 얻고 커피의 쓴맛을 즐기는 미각을 잃게 된 것이다. 사랑스러운 커피의 쓴 맛이 이제는 쓰기만 하다, 그냥 쓰다!


이럴때는 다소 비싸긴 하지만, 하와이어 코나를 마셔야 한다. 코나 커피의 풍부한 향과 맛은 행복한 일상에 잘 녹아드는 풍미이다. 커피가 유난히 쓰게 느껴지던 날, 결국 나는 커피를 씽크대 속으로 버리고 말았다. 커피를 버리다니! 이런! 안에 든 얼음은 거름채를 이용해서 구출했다. 아이스를 즐기지 않는 우리집에서 얼음은 귀한 것이었다. 거의 다 녹은 몇 개의 얼음이 생존했다. 건져낸 얼음을 다시 텀블러 속에 넣고 물을 채워넣는다. 아이스티 한 봉지를 뜯어내어 순식간에 쏟아 넣었다. 가루 연기가 확 하고 번지더니 이내 물과 섞인다. 아메리카노 대신 아이스티를 마셨다.


어느날은 회사에 대한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느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큰 아이가 와서 살며시 안아주는데 체온이 따뜻하고 편안하다. 마침 창밖에 비도 오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내렸다. 이번에는 쓴 맛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역시 커피는 적당한 괴로움이 있어야 맛이 나는 것인가. 그래서 회사에서 마시는 커피가 집에서보다 맛있었던 걸까. 지난번과 같은 원두 캡슐이었는데도 쓴 맛이 아니라 구수하게 느껴져서 한 잔을 모두 마셨다.


나는 그동안 커피 한 잔의 쓴 맛에 인생의 노와 애를 녹여내고 있었나 보다. 커피의 쓴 맛을 즐기는 미각을 잃는게 나은 건지, 노와 애가 섞인 인생을 살며 쓴 커피 맛을 즐기는 게 나은 건지, 혼자서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부질없다. 나의 생각과 관계없이 인생은 언제나 희노애락을 섞은 혼합물 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곧 커피가 쓸 수록 맛있게 느껴지는 시기가 다시 도래할 것이다.


이곳 샬럿타운에서는 진한 샷에 우유가 가미된 코르따도를 즐기고 있다. 묵직하면서 달콤하면서 적당히 쓴 맛. 피곤할 때 마시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쓴 맛과는 다르다. 달콤하고 평온한 이 시간들에 초콜릿같은 부드러운 맛을 입혀주는 쓴 맛이다. 온전히 즐기기 위해 마시는 커피, 아메리카노의 쓴 맛이 필요한 시기가 오기 전까지, 충분히 즐겨야겠다. 그 시기가 오더라도 쓴 커피 한 잔이면, 다시 행복이라는 선으로 인생이 다가가도록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샬럿타운의 리시퍼 커피 컴퍼니에서 주문한 코르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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