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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Aug 05. 2022

사이렌 소리에 한밤중에 일어나 의식흐름대로 쓰는 글

캐나다 PEI 샬럿타운에 온 이후  처음으로  두 아이와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삐뽀 삐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집을 한 바퀴 돌며 울리는 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 불을 켜고 일인용이지만 다리 접고 눕기가 가능한 소파에 앉았다. 아, 이 소파는 한국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다! 아직 자정이 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저녁을 거하게 먹은 날은 오히려 더 출출하다. 오늘, 아니 어제 저녁은 한국분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순두부와 자장면을 먹었다. 메뉴만 보고 찾아간 곳인데, 주인이 한국분이셨다. 이런 저런 정보를 이야기해주시며, 음식의 양도 넉넉하게 내어주셨다. 덕분에 아이 둘과 함께 배가 터지도록 한국쌀로 만든 밥과 음식을 먹었다. 집으로 갈때 따로 밥과 김치를 챙겨주시기까지 했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저녁 식사였다.


거하게 먹은 식사가 소화되고 나면 평소와는 다르게 출출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주방으로 걸어갔다. 자기 전에 끓여 둔 물이 주전자 속에서 여전히 따뜻했다. 호스트 헤더가 준비해 둔 카모마일 티백을 하나 꺼냈다.



이곳 숙소에 온 뒤로 아이들과 각자 차잔을 하나씩 정했다. 나의 것은 갈색으로 손잡이에 손가락 네 개가 전부 들어가서 편하다. 매번 옆에 그려진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고 사용했었는데, 오늘 찬찬히 들여다보니 말과 엄마, 아빠, 아이 두명이 그려져 있다. 바닥에는 이름처럼 보이는 영문이 세겨져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직접 만들고 그림을 세긴 머그잔인듯 하다. 누굴까? 헤더에게 메시지를 남겨볼까 하다가 그동안 여러 질문으로 귀찮게 한 일이 떠올랐다. 궁금증은 미궁 속에 남겨두기로 한다.


캐나다에 오면서 나는 노트북과 함께 사용할 마우스와 패드를 챙겨왔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허허 웃었다. 촌스럽다와 비슷한 의미였을 것 같다. 귀엽다는 의미도 조금 섞여 있었으려나. 소파에 앉아서 글을 쓸 때면, 노트북을 사이드 테이블에 놓고 사용한다. 딱 노트북을 하나 놓을 정도의 크기이다. 그래서 마우스와 패드는 바로 옆, 동그란 테이블 위에 놓는다. 지금 그 테이블 위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습윤밴드가 올려져 있다.


초등 4학년 여학생인 큰 아이는 한국에서 넘어져서 까지거나 한 일이 거의 없다. 적어도 4학년이 된 이후로는 없다. 그런데 이곳 샬럿타운에 와서는 두 번이나 넘어졌다. 두번째 사고는 컨페더레이션 아트센터 지상에서 벌어졌는데, 바닥에는 네모난 돌이 쭈욱 깔려 있었고 그 중 하나의 돌이 아주 살짝 위로 튀어 나와 있었다. 이곳에서는 걷는 게 일상이다. 어디를 가든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저녁 7시 공연을 기다리던 아이의 다리가 아침부터 걸어다녀서 많이 노곤했을 것이다. 아이는 그 작은 틈새에 넘어지고 말았다. 꽤 넓은 면적의 찰과상이 생겼다.


한국에서 가져온 습윤밴드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일반적인 상처에 흔히 사용하는 것, 다른 하나는 화상처럼 진물이 많이 나올때 사용하는 꽤 도톰한 것이었다. 전자를 붙여주었더니 정말 많이 부풀어올랐다. 진물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도톰한 것으로 다시 붙여 주었다. 다음 주는 캐번디쉬로 이동해서 해수욕을 할 계획인데, 그때까지 잘 나았으면 좋겠다. 흉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정이 조금 넘은 깜깜한 밤에,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샬럿타운 공항은 숙소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자주 보게 된다. 항공사 무늬가 보일정도로 아주 낮게 나는 비행기이다. 손을 갖다대면 장난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재미있다.


사이렌 소리, 비행기 소리, 그리고 작은 창문밖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한밤중에도 여러 사람들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는 방에서 쿵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혹시 침대에서 떨어지는 소리인가하고 놀라서 가보니,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잠을 자고 있다. 몸을 뒤척이다가 낸 소리인가보다.


아이들은 낮에도 참 시끄럽다. 특히 둘째 아이는 동물 흉내를 자주 낸다. 그리고 목소리가 기본적으로 큰 편이다. 첫째 아이가 넘어지던 날, 우리는 컨페더레이션 아트센터에서 빨강머리앤 뮤지컬을 관람했다. 다행히 시간 여유가 있어서 집에 가서 습윤밴드를 가져와 아이 상처에 붙인 후 공연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공연장 예약을 하루 전에 했는데, 누군가 취소한 자리인지 아주 좋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아이들과 자리에 앉아있는데 앞줄 왼쪽으로 네 명의 외국 아저씨들이 앉아 있었다. 뒤에서 봐도 얼마나 정자세로 앉아 있는지 느껴질 정도였는데, 공연 내내 그 자세를 유지하며 웃음이나 반응 없이 진지하게 공연을 관람했다. 뒷줄에서는 공연 내내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앞자리에는 여자 아이가 지루해서 어쩔줄 모르며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서 작은 아이도 몸을 배배 꼬꼬 있었다.


작은 아이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면 집중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지루해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거슬렸던 것인지, 한국어 소리가 거슬렸던 것인지, 앞줄의 외국 아저씨들 중 한 명이 공연 도중에 고개를 돌려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그래도 아이에게 쉿! 이라고 제스처를 취하며 단속을 하던 중이었다. 그와중에 뒷줄의 여자 목소리는 계속 크게 웃고 있었다.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던 남자는 바로 옆에 앉은, 내 앞에 앉은 여자 아이가 움직이자 바라보며 눈치를 주었다. 하, 정자세로 앉아있는 모양새가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같았다. 뚫어져라 무대를 바라보며 연구라도 하는 듯했다. 나는 계속 아이를 단속하느라 공연을 눈으로 보는지 코로 보는지 분간이 안되었다.


컨페더레이션 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빨강머리앤 뮤지컬은 유아도 관람이 가능하다. 게다가 뒷줄의 여자 목소리는 계속 웃어대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지 않을 때 혼자 터지듯이 웃는 소리는 꽤나 튄다. 그런데 저 사람의 시선은 왜 옆 자리 여자아이와 내 아이에게만 향하는 걸까. 공연장에서 대화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이가 아닌가. 아이에게 어른처럼 완벽한 대화차단을 요구할 수는 없다. 아이가 계속 말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공연을 보며 아이가 내는 어? 어! 이런식의 감탄사에도 앞 자리 남자는 반응을 했다. 어른과 다른 목소리 높이와 한국어 발음 소리때문이었으리라.


그에게 이 공연은 성인이상 관람가여야 했다. 어른들만 사는 세상, 나이든 사람들만 사는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가. 어린이의 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고, 조용한 어른들만 사는 동네는 곧 사라질 동네이다. 뒤돌아 본 남자를 포함해서 네 명의 남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모아이 석상의 뒷모습을 보는 듯했다. 석상처럼 공연내내 움직이지 않고, 석상처럼 한 곳을 나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빈틈없는 정자세, 저기에 아이에 대한 배려가 끼어들 공간은 없어 보인다. 모아이 석상을 만들었던 이스타 섬 부족들은 사라졌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결국 후손이 없었기에 사라졌을 것이다.


글로는 이렇게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저 큰 외국인 남자가 공연 브레이크 타임에 말을 걸어서 뭐라고 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작은 아이를 계속 신경쓰면서 머릿속으로는 할 말을 영어 문장으로 만들어보느라 1부 공연 후반에는 정신이 없었다.


"내 아이 소리때문에 당신의 공연 관람을 방해한 것 같아서 먼저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웃음 소리도 공연에 대한 반응이듯이 내 아이의 소리도 공연에 대한 반응입니다. 더구나 이 공연은 어린이 관람가이고, 내 아이가 내는 소리 정도는 충분히 배려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아이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행동은 무례한 행동입니다. 나는 계속 아이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당신도 나의 아이를 다시는 그렇게 빤히 쳐다보며 위협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걸 영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머릿속은 계속 복잡했다.


공연 브레이크 타임이 되었다. 그 남자가 일어섰다. 나는 긴장을 하고 마음 속으로 대비를 했다. 불현듯 외국에서 외국인과 싸우다가 경찰서에 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몹쓸 상상력! 동시에 외교부 콜센터에서 외국 경찰관의 말을 삼자대면으로 통역해주는 서비스가 있던 것도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에 남자는 통로를 걸어서 공연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2부가 시작하기 직전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뒤쪽으로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아까 공연 도중에 저희 아이를 빤히 쳐다보셨죠? 시끄러워서 그러셨던 건가요? 내 아이 소리때문에 당신의 공연 관람을 방해한 것 같아서 먼저 사과드립니다." 이후 내용은 위쪽과 동일하다. 내가 먼저 이렇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공연 도중에 5초나 빤히 사람을 쳐다보는 건 당신이 잘못한 행동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지 않았을텐데. 내가 할 말은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건네지 못했다.


하... 마음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 영어를 못해서 그덕분에 외국 경찰서에 갈 일이 없어졌구나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어른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작은 아이는 그 남자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았다. 어두운 공연장이어서 못 봤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었다. 엄마인 나는 이렇게 부당한 상황에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계속 무겁다. 이번 생애에 영어는 포기하기로 했던 마음을 돌려 먹어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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