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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Sep 28. 2022

그린게이블즈 풍경을 찾아서

캐나다 앤 인형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졌던 건 바로 '그린게이블즈'였다. 앤이 살았던 초록지붕의 집, 그곳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이 나와 아이들을 이곳,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로 오게했다.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머릴러, 수줍고 배려심 깊은 매튜, 그리고 앤이 함께 살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 발을 디디면 소설 속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그린게이블즈 헤리티지 플레이스' 는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캐번디쉬에 위치해 있다.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오후 늦게서야 멈추기 시작했다. 세찬 비를 피해 숙소 안에서 머물던 나와 아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숙소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앤의 초록지붕 집'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큰 건물이 보인다. 앤의 집은 아니고 가로로 넓직한 평범한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매표소가 보인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동그란 스티커를 하나씩 받아 옷 위에 붙였다. 건물 안은 전시실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소설과 L.M.몽고메리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니 헛간이 보였다. 말이 없는 검은 마차 한 대가 놓여 있다. 매튜와 앤이 저 마차를 타고 이곳 그린게이블즈로 왔었지, '환희의 하얀길'과 '빛나는 호수'를 보며 감격하는 앤의 표정이 그려졌다. 나의 마음 속 앤도 설레는지 가슴이 뭉글해져왔다. 조금만 기다리렴, 곧 너의 집을 보여줄게, 나의 앤에게 말을 건넸다.


꽤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듬성 듬성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 아이들도 나무와 꽃을 구경하며 안쪽으로 걸었다. 저기 앞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자세히 보니 건물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울타리 바로 안쪽 초록 문이 출구인 모양이다. 건물은 나무로 가려져 있었는데, 왼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그 길로 몇 걸음 걸었을 때, 와! 초록지붕의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린게이블즈 헤리티지 플레이스



지붕이 뾰족하게 만나는 곳 바로 아래에 삼각형이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 아래에는 2층 창문이 두 개 있고, 바로 아래에 1층 창문 두개와 출입문이 있다. 삼각형 지붕 옆으로 기역자 모양의 건물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곳에도 2층과 1층에 창문이 하나씩 달려 있다. 앤의 집은 흰색 벽면을 제외하고 창문과 문, 지붕이 모두 초록색이다. 집 바로 앞에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다.


한국에서 거의 반대편에 있는 이곳, 앤의 집에 드디어 도착하다니! 나의 앤과 마음속으로 끌어안고 감동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모여든걸까. 입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이 꽤 길었다. 줄을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계속 모여든다. 


초록지붕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진입금지 로프였다. 우리는 진입금지 로프를 안내선 삼아 좁은 통로를 걸었다. 좁은 계단이 나타나고 2층으로 올라가 역시 로프를 따라 통로를 걸었다. 머릴러의 방, 매튜의 방, 앤의 방, 손님방, 재봉틀이 놓인 옷을 만드는 방 등 작은 방이 계속 이어졌다. 이곳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마치 이야기속 등장인물이 된 듯한 감동이 아니라 피로함이었다. 나의 앤이 나에게 말했다. "이곳은 전혀 상상의 여지가 없어!"


'그린게이블즈'처럼 오래되고 관람객이 많은 장소에는 진입금지 로프가 설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허리 높이의 로프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 너머 방의 모습에 집중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될 일이었다. 샬럿타운의 비스콘필드 히스토릭 하우스를 관람했을 때처럼. 하지만 이곳은 비스콘필드보다 훨씬 좁았고 관람객은 훨씬 많았다. 겨우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종종 걸음으로 움직인다. 나의 상상력의 흐름이 아닌 행렬의 흐름에 맞추어 이동해야 한다.



그린게이블즈 앤의 방



앤의 방에는 밖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고, 제라늄이 조그만 탁자에 놓여 있다. 그 옆에 퍼프 소매 갈색 드레스가 옷걸이에 걸려 있다. 나의 앤이 방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뒤쪽에서 멈칫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더니 관람객 두어 명이 내 앞으로 휙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좁은 통로에서 빠르게 걸을 때 생겨나는 날카로운 공기의 흐름이 휙하고 오른쪽 팔 바깥쪽을 가른다. 다닥다닥 붙어서 더이상 높아질 수 없을 것 같은 뒤쪽 행렬의 밀도가 신기하게 점점 높아진다. 이쯤되면 그 어느곳에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나의 앤이 가장 보고 싶어했을 이곳을 그냥 지나치듯 구경해야 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출발하기 전에, 그린게이블즈를 찍은 영상을 여러 편 찾아보았다. 방마다 정성스럽게 카메라를 비추며 소설 속 장면을 나레이션하던 공중파 방송의 영상, 개인 카메라로 짧게 촬영하여 설명을 덧붙인 유투브 영상. 모두가 그린게이블즈에서 상상력 넘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토록 밀도가 높고 붐비는 장소에서 온 신경을 발걸음에 두느라 어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음 속 나의 앤을 불러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전혀 없었다. 


빨강머리앤이 사랑했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하는 질문일 것이다. '그린게이블즈 헤리티지 플레이스'에서 그 답을 찾는데 실패했지만, 아직 캐번디쉬 곳곳에 빨강머리앤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그린게이블즈 헤리티지 플레이스 바로 옆에는 '에이번리 빌리지'가 조성되어 있다. 빨강머리앤이 살았던 마을인 에이번리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로, 그 시절의 교회 건물까지 그대로 옮겨 왔다. 현재 교회 건물은 '붐 버거'를 판매하는 매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대여섯 채의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음식점, 카페, 아이스크림과 기념품 샵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에이번리 빌리지 입구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장소'라는 문구가 표기되어 있다. 맙소사! 이곳 역시 앤의 에이번리 마을을 상상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에이번리 빌리지에 있는 samuel's



에이번리 빌리지에 위치한 samuel's 는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연다. 두 아이와 함께 아침 햇살 속을 걸으며 싱그러운 녹색 잔디와 예쁜 꽃이 있는 정원을 5분 정도 걸으면 그곳에 도착한다. 아침식사를 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붐 버거는 또 얼마나 맛이 있는지, 오픈 시간인 10시를 기다린 날도 있었다. 에이번리 빌리지가 처음 조성되었을 때 이곳은 수공예품을 구경하고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음식점보다는 좀더 '상상의 여지가 있는' 장소였던 것 같다. 에이번리 빌리지 근처는 골프장과 놀이공원이 들어서 있다. 관광객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장소'가 필요했으리라. 


섬의 이러한 변화는 빨강머리앤이 사랑한 풍경을 보기 위해 캐번디쉬를 찾은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적응한 무척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앤은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은 앤의 내면을 아름답고 강하게 키워주었다. 가문비 나무, 자작 나무, 단풍 나무, 고사리 등 양치류, 메이플라워, 물봉선화, 붉은 흙, 해변과 호수... 소설 속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이후에 만들어진 변화를 잠시 무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토론토를 경유하여 샬럿타운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경이었다. 공항 밖으로 나와서는 맑고 파란 하늘을 보고 감탄했다. 깨끗한 공기가 가득한 하늘, 빨강머리앤이 숨쉬던 그대로의 하늘일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한 곳은 샬럿타운이었다. 샬럿타운은 섬에서 가장 큰 도시로 소설 속 풍경보다는 현대 캐나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각종 기념품으로, 뮤지컬과 공연으로, 소설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샬럿타운에서 캐번디쉬로 가는동안 서머사이드를 지나게 된다. 서머사이드는 소설에서 앤이 교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학교가 있던 지역이다. 서머사이드를 지나는 길 위에서 나는 빨강머리앤이 사랑했을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도로 양 옆으로는 넓은 농장이 펼쳐져 있고 한국의 논에서도 볼 수 있는 '마쉬멜로'가 드문 드문 놓여 있다. 소나 말이 모여 있는 장면이 보일 때면 뒷좌석에 탄 아이들은 서로 먼저 발견했다며 겨루었다. 운전을 하던 나의 관심은 도로가 끝나는 그곳에 있었다. 오르막 경사로를 달릴 때면 눈 앞의 도로가 끊어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세로로 뻗은 도로 끝을 막는 가로 방향으로 농장이 펼쳐지고, 그 위로 다른 농장이 층층이 쌓여 있다. 농장들은 서로 다른 빛깔을 띄고 있어서 지그재그로 채워넣은 것처럼 보인다. 내리막이 시작되면 도로는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휘어있고, 회전과 동시에 또다른 멋진 풍경이 나타난다. 앤의 시대에는 마차로 이동했을테니 좀더 천천히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캐번디쉬 풍경



캐번디쉬에 가까워지면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소설 속 풍경도 사라진다. 캐번디쉬는 소설 속 풍경과 현대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샬럿타운보다 시골스러운 풍경과 잘 보존되어 있는 앤과 몽고메리 관련 문화 사적지들은 빨강머리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충족시켜준다. 반면에 '그린게이블즈 헤리티지 플레이스'처럼 너무 붐벼서 감성을 제한하기도 하고, '에이번리 빌리지'처럼 본래 용도와 다르게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캐번디쉬와 그 부근은 L.M.몽고메리 작가의 탄생지, 어릴적 살았던 집, 그녀가 사랑한 친척집, 젊었을 때 살던 집,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살던 집, 가족과 함께 묻힌 묘지, 남편을 만난 교회 등 소중한 장소가 많은 지역이다. 소설 속 앤이 살았던 에이번리 마을의 풍경을 창조하는데 영감이 되어준 장소들이다. 섬에 머무는 한 달 동안 두 아이와 함께, 그리고 나의 앤과 함께 이 장소들을 경험해 보았다. 하나같이 행복한 순간들이었지만, 소설을 읽으며 기대했던만큼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앤을 추억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소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마음으로 섬에서의 마지막 날을 시작했다. 이날은 샬럿타운 공항에서 토론토로 가는 저녁 비행기를 타야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샬럿타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앤드류 멕페일 농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드디어 앤이 느꼈을 벅찬 감동을 주는 황홀한 장소를 찾았다!


앤은 매튜와 함께 마차를 타고 에이번리 마을로 가는 동안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사과나무 꽃이 핀 가로수길 사이로 마차가 지나갈 때, 앤은 황홀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매튜가 침묵을 깨고 앤에게 말을 건네자, 아쉬운 표정으로 몽상에서 빠져나온 앤은 이렇게 말한다. 


"예쁘다고요? '예쁘다'는 말만으로는 어울리지 않아요. '아름답다'로도 모자라요. 어떤 말도 모두 어림없어요. 아, 마치 꿈 같았어요! 상상의 세계보다도 멋진 곳을 처음으로 봤어요. 여기가 뿌듯해지는 것 같았어요. ...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가로수길'이라고 불러도 나는 '환희의 하얀 길'이라고 하겠어요."


앤드류 멕페일 농장은 도로를 벗어나 마차가 다니는 길로 좀더 들어가야 입구가 나타난다. 입구가 보이기 직전에 통과하는 가로수길은 마치 마법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초록 터널 안으로 차가 진입하는 순간 헉하고 숨이 멈춰질 지경이었다. 영화에서는 이런 광경이 뒤에 새로운 세계가 이어지곤 했다. 앤이 '환희의 하얀 길'을 보았을 때 기분이 정확히 이런 기분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앤이 말을 걸어왔다. "여긴 정말 아름다워. 처음 보는 새로운 이곳을 나는 사랑하게 될 것 같아. 이 가로수길을 '환희의 초록 길'이라고 부르자."


나의 앤이 '환희의 초록 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멕페일 농장의 진입로는 이런 모습이다.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붉은 흙길이 좁고 곧게 앞으로 이어진다. 자동차 한 대가 여유있게 지나갈 수 있지만, 맞은 편에서 다른 차가 나타난다면 곤란해지는 너비이다. 하지만 숲속 깊은 이곳을 지나다니는 차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붉은 흙길 양 옆으로 매우 곧게 위로 솟은 아름다운 나무들이 빼곡히 줄을 서고 있다. 하얀 자작나무도 보이는데, 나무 줄기에서 뻗어나온 잔가지들이 다른 나무의 잎과 교차하면서 빛이 들어오는 걸 차단하고 있다. 운전을 하면서 양옆을 바라보면 도로변 가로수가 아니라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무들의 발밑에는 낮은 식물이 자라나서 둥글둥글 무리를 이루고 있다. 마치 키 큰 나무가 초록 잎을 엮어 만든 풍성한 장식술이 달린 신발을 신고 있는 듯 하다. 나무들의 머리끝은 서로 닿아서 아치를 이루고 있는데, 이점이 초록 터널을 더욱 신비롭게 보이게 만든다. 풍성한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아치의 틈새를 겨우 빠져나온 빛만이 초록 터널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틈새를 비집고 내려온 빛줄기는 붉은 흙길과 낮은 식물에 불규칙하게 닿는다. 환한 낮이지만 초록 터널 안은 적당히 어둡고 빛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갑자기 앨리스 토끼가 나타나서 한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길 안내를 해주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장소이다. 


'환희의 초록 길' 멕페일 농장 진입로



 '환희의 초록 길'을 지나 입구가 보이면 조금 더 차를 몰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적당한 장소에 주차를 하고 걸으면 흰색과 초록색으로 만들어진 저택이 나온다. '그린게이블즈'를 넓힌 것 같은 모양새다. 1층과 2층의 내부를 천천히 둘러본다. 2층에는 글쓰기를 좋아했던 앤에게 어울리는 책상이 삼 면이 창으로 둘러쌓인 공간에 놓여 있다. 1층의 응접실에서는 머릴러와 린다 부인이, 서재에서는 앤과 다이애너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다.  


저명한 학자이자 작가인 앤드류 멕페일 박사의 자택인 '앤드류 맥페일 농장'은 소설 속 풍경에 영감을 주지 않은 장소이다. 이곳은 L.M.몽고메리 작가의 삶에 잠시 스친 장소일뿐이다. 1910년에 빨강머리앤 소설에 매료된 캐나다 총독이 이곳에서 몽고메리 작가를 만나고자 했었다. 캐번디쉬에서 앤과 몽고메리 작가와 관련한 모든 장소를 두고, 이곳에서 황홀한 감동을 받은 점은 아이러니하다. 





앤드류 멕페일 농장에서 빨강머리앤이 사랑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곳은 앤드류 박사의 죽음 이후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가 정부에 기증되었다. 현재는 19세기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당시 섬의 문화와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한참을 달려서 도착할 수 있는 숲 속에 위치한 이곳은 다른 어느 장소보다 빨강머리앤이 쓰여진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설 속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장소가 있다. 바로 캐번디쉬 해안 절벽이다. 붉은 흙으로 만들어진 절벽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감동을 전해준다. 빨강머리앤은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했다. 에이번리 그린게이블즈에 도착한 앤은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길버트와 결혼하여 포 윈즈 항구에 신혼집을 마련할 때도 주변에 숲과 호수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늘은 집 주변을 산책하며 소설 속 앤처럼 나만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나의 앤은 이미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니, 살짝 귀뜸을 부탁해야겠다. 


캐번디쉬 해안가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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