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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Sep 29. 2022

아이들과 머물 숙소 '우리집' 고르기

"내 생명에서 무엇인가가 찢겨져나가는 기분이야."

앤은 신혼집을 떠나야 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앤은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집을 사랑했다. 그리고 집에서 보낸 시간과 사람들을 사랑했다. 앤에게 집은 살아숨쉬는 친구같은 존재였다.


길버트와 결혼한 앤은 에이번리를 떠나 포 윈즈 항구의 작은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의사가 된 길버트가 그곳에서 숙부님의 병원을 이어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앤은 외딴 지역에 있는 작은 집을 '꿈의 집'이라고 부르며 정성으로 손질하고 뜰을 가꾼다. 꿈의 집에서 첫째 아이 조이가 하루동안 짧은 생을 살다갔으며, 둘째 젬이 태어나 웃음을 안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집이 작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함께 살며 일을 돕는 수전은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경치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소설 빨강머리앤의 원제는 'Anne of Green Gables'이다. 직역하면 '초록 맞배지붕집의 앤'이다. 게이블(gable)은 지붕을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 맞대서 짓는 지붕모양을 의미한다. 앤이 살던 시절 캐나다 사람들은 이런 형태의 목조건물에서 거주했다. 섬의 흙으로는 벽돌을 만들기 어려웠다. 벽돌은 부유한 사람들이 섬 밖에서 구해올 수 있는 귀한 재료였다.


캐나다 샬럿타운과 캐번디쉬에서는 다양한 색이 입혀진 세모 지붕의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세부적인 건축방법이 예전 방식을 따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관상 앤의 집과 비슷했다. 현대적인 '빌딩'건물은 관공서, 도서관, 호텔 정도이다. 특히 샬럿타운 거리에서는 건물의 아름다움과 이국적인 느낌이 매번 아이들과의 대화 소재가 되었다.


캐나다 PEI 샬럿타운 거리


캐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심사숙고했던 일중 하나가 숙소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홀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두 아이와 함께 머물러야했기에 숙소는 정말 중요했다. 게다가 관광지를 쇼핑하듯 돌아보는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처럼 일상을 살아보는 여행을 목표로 했었다. 숙소는 한국의 집처럼 편안해야 했다. 앤의 집처럼 주변에 나무와 호수가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이들은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머물고 싶어했다. 하지만 금전적인 측면도 고려해야했기에 최종 결정의 순간까지 무척 고심했다.


이번 캐나다 여행을 위해 예약한 숙소는 모두 다섯 곳이었다. 토론토에서 레이오버 동안 1박을 할 호텔 두 곳과 샬럿타운에서 약 3주간 머물 에어비엔비, 캐번디쉬에서 약1주일간 머물 에어비엔비, 그리고 샬럿타운에서 토론토로 이동하는 날 머물 Inn까지. 에어비앤비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원래 계획에 없던 숙소였다. 에어캐나다 항공사 일정으로 비행시간이 변경되면서 급하게 추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호텔, 에이비엔비, Inn 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숙소를 경험했다. 아이들과 여행할 때 어떤 형태의 숙소가 적합할까? 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샬럿타운 빅토리아 국립공원 인근의 Inn 숙박시설



"엄마, 이렇게 좋은데서 잠만 잔다고? 사진이라도 찍자!"

섬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낼 샬럿타운 콜로니얼 참 인(Colonial Charm Inn)에 도착했다. 캐번디쉬에서 해수욕을 하다가 샬럿타운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 30분경이었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전화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통화를 해서 현관문 앞에 붙어 있던 봉투를 찾고, 그 안에서 방의 열쇠를 찾았다.


3층으로 된 Inn 건물이었는데, 우리는 '하버트 윌리엄 스위트'에 배정되었다. 2층에서 방문을 열었는데 계단이 보였다. 오직 계단만 보여서 순간 놀랐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니 넓은 방이 나타나 또 놀랐다. 침대 두 개와 주방, 발코니 등이 구비된 매우 넓은 방이었다. 3층 전체를 사용하는 듯했다. 이런 곳이라면 며칠을 머물러도 좋을 것 같았다.


"엄마, 내일 아침 먹고나면 바로 나갈거야? 근데 왜 이렇게 좋은 데를 예약했어. 돈 아깝게."

돈 아깝게라는 둘째 아이의 말이 웃음이 나왔다. 캐나다 여행 동안 숙소나 비행기, 그외 지출하는 경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정도 숙소면 꽤 비쌀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우리가 캐나다에서 머물렀던 숙소는 모두 1박에 20만원 내외로 지불했다. 물론 우리가 체감했던 숙소의 컨디션은 상당히 달랐지만.


캐나다 샬럿타운에는 Inn 형태의 숙삭시설이 여러 곳 있다. 빅토리아 국립공원 해변 근처에 쭈욱 늘어선 집들이 예뻐서 구경을 하다가 Inn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No Vacancy, 빈 객실 없음이라고 적힌 것을 보니 숙박시설인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부티크 호텔, 비앤비(B&B)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집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예쁘던지, 저런 곳에서 하루 묵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출국 직전 변경된 일정으로 급박하게 1박을 예약했던 숙소가 Inn 이었다는 걸 나중에 확인하고, 나의 손가락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Inn의 매력은 앤틱한 분위기, 캐나다의 전형적인 집 형태가 주는 아름다움이다. 빨강머리앤이 살던 시절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실내 계단과 응접실에는 고풍스런 카페트가 깔려 있고, 테이블 위에 놓은 찻잔과 의자가 옛스러운 멋을 자아냈다. 방에 들어서니 나무로 된 가구와 이불의 패턴이 앤티크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하룻밤을 지내보니 분위기만 앤티크한 것이 아니었다. 삐끄덕 삐끄덕,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글을 쓰려고 앉은 의자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 무늬 장판이 아니라 진짜 나무로 만들어진 방바닥은 걸을 때마다 작은 삐끄덩 소리가 났다. 자고 있는 두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러 가는 발걸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이보다 더 거슬리는 소리는 웅웅 거리는 소리인데, 방 안 전체가 울리는 듯한 낮고 작은 웅웅거림이다. 아마 건물 전체를 위해 사용하는 모종의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일 것 같다.


이날 내가 새벽 2시부터 잠이 깬 이유는 더 큰 웅웅거림 때문이었다. 방안에서 나는 소리의 범인은 바로 냉장고였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냉장고였기에 잠시 고민끝에 전원 플러그를 뽑아냈다. 견디기 힘든 웅웅거림이 사라지고 작은 웅웅거림은 여전하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니 겨우 벗어나진다. 두 아이들이 잘 자고 있으니 다행이다. 아이들은 밤 시간의 소동을 모르니 이곳 Inn의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할 것이다.



샬럿타운의 아파트 숙소



다음번 캐나다 여행을 위한 숙소는 '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아파트는 캐나다의 '콘도'에 가깝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을 할 때 '아파트'라는 설명이 있으면, 적어도 샬럿타운에서는 캐나다의 전형적인 집 형태를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머물렀던 아파트는 침실 3칸과 거실, 주방, 욕실 등이 분리되어 있고, 넓은 마당같은 발코니가 있었다.


아이들은 샬럿타운에서 지냈던 아파트를 '우리집'이라고 불렀다. 약 3주동안 머물기도 했지만, 그만큼 집처럼 편안했기 때문이다. 약1주일 동안 머물렀던 캐번디쉬의 숙소를 포함해 다른 네 곳은 모두 '우리집'으로 불리지 못했다. 샬럿타운의 '우리집'에는 아이들 각자의 방이 있었고 마당같은 발코니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무엇일까? 이것은 캐나다에서 아이와 함께 지낼 숙소를 선택하는 필수 조건이다. 캐번디쉬 숙소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캐번디쉬의 동화같은 커티지



캐번디쉬 숙소 코티지였는데, 동화속 한 장면 같은 장소였다. 빨강머리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민트색 지붕의 작은 집, 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나무들, 그곳에는 다람쥐가 살고 있었고 아침 저녁으로 새들의 노래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곳을 '우리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샬럿타운과 캐번디쉬 숙소는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신발을 벗느냐 신느냐하는 문제이다. 샬럿타운 아파트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공간이었고, 캐번디쉬 코티지는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샬럿타운 Inn 숙소는 신을 신을지 벗을지 애매한 공간이었는데, 우리는 신을 벗기로 결정했다. 토론토 공항 인근에서 묵었던 호텔 두 곳은 모두 신을 신어야 하는 장소였다.


낯선 장소로의 여행은 지금껏 내가 누려왔던 평범함이 얼마나 비범한지를 알려준다. 신을 벗고 지내는 숙소에서, 나는 바닥에 털버덕 앉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러지 못해서 조금 괴롭기까지 했다. 어른인 내가 이럴 지경인데 아이들은 어떠했겠는가. 샬럿타운 아파트에서 서 거실과 방의 바닥을 맨발로 누비고 다니던 아이들이었다. 한국에서처럼 바닥에 앉아 퍼즐을 맞추고, 책을 읽고, 놀이를 했다. 동화 속처럼 아름다운 캐번디쉬 커티지였지만 침대와 소파 위에서만 신발을 벗을 수 있었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깔린 바닥 장판은 마음의 안정을 주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소설 속 앤은 길버트와 아들 젬, 일을 돕는 수전과 함께 '꿈의 집'을 떠나 모건 저택으로 출발한다. 앤은 신부로 처음 발을 디딘 꿈의 집 층계에 키스를 하고 작별인사를 한다. "안녕, 사랑하는 나의 작은 꿈의 집이여"


나와 아이들은 샬럿타운의 아파트를 떠날 때 앤처럼 작별인사를 했다. 물론 층계에 키스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 안 곳곳을 향해 안녕이라고 작별을 고했다. 캐리어를 끌고 집 밖 도로를 걸어가면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캐번디쉬에서 시간을 보낸 뒤  공항에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샬럿타운에 와야했다. 우리는 샬럿타운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샬럿타운의 '우리집'을 찾아가 진짜 작별인사를 했고, 자주 가던 근처 놀이터와 도서관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안녕, 사랑하는 우리집이여"


아이들과 해외 여행을 하면서 숙소를 예약할 때 확인하면 좋을 내용을 몇 가지 추가하고 싶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필수이다. 매 끼를, 특히 아침 식사를 매번 사먹는 건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 가스렌지와 식기세척기도 필수이다. 오븐이 있으면 감자나 고기를 구울 때 편하다. 여름이라면 에어컨도 필수다. 캐나다 PEI 는 에어컨이 없는 숙소가 많다. 한국처럼 밤낮으로 덥지 않고, 한낮을 제외하면 선선한 편이다. 여행 기간 동안 낮에 매일 외출하고 저녁에 돌아올 계획이라면 에어컨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은 쉬는 날이 필요하고, 한낮에 숙소에 있게 될 것이다. 이때 에어컨은 무척 유용하다.


짐을 꺼내어 정리할 서랍장, 사무용 공간 등이 있으면 편하다. 주방에는 식기와 키친타올, 오일, 소금, 후추 등이 구비되어 있으면 편하다. 헤어드라이기, 샴푸, 샤워젤, 수건 등이 제공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에어비앤비에는 웹사이트에 적혀 있는 물건들만 호스트에게 요구할 수 있다. 이외 물건들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게스트가 구매하여 사용해야 한다. 샬럿타운 '우리집'에는 웹사이트에 적힌 물건 이외에도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소소한 물건들, 예를 들어 빨래바구니, 지퍼백, 호일, 케첩 등 각종 소스와 각종 차 티백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길버트는 앤의 취향을 잘 알고 있기에 신혼집을 구할 때 주변에 전나무숲과 오솔길, 자작나무, 시냇물이 흐르는 장소를 선택했다. 앤은 꿈결같은 표정으로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고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면 자기가 찾아낸 그 집이야말로 틀림없는 내 꿈의 집이야."  


L.M.몽고메리는 캐번디쉬에서 조금 떨어진 클리프턴에서 태어났다. 클리프턴의 현재 지명은 뉴런던이다. 이곳에 있는 몽고메리 생가는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어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뉴런던에서 세인트 로렌스만 바다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면 프렌치 리버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소설 속 앤과 길버트의 신혼집이 있는 포 윈즈 항구는 뉴런던만을 모델로 하고, 신혼집인 '꿈의 집'은 프렌치 리버 마을을 모델로 하고 있다. 


뉴런던의 몽고메리 생가



프렌치 리버 마을은 바로 앞에 바다로 향하는 물이 넓게 흐르고 온 사방이 넓은 초록 들판이다. 들판 사이마다 경계를 짓듯 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물가에는 파랑색, 빨강색, 하얀색 건물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는데 목가적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 뒤로 여기 저기 농가가 흩어져 있다. 높고 낮게 이어지는 농장과 목초지는 서로 다른 초록색 빛깔을 내고 있다. 짙은 나무 숲과 반짝거리며 흘러가는 파랑 물빛은 이국적인 건물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자동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는 동안 나의 앤이 속삭였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나무와 호수가 있어요. 마치 꿈의 집을 다시 보는 것 같아요."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한 숙소야 말로 꿈이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온 몸으로 바닥을 딩굴며 노는 일이 가장 즐거운 초등 아이들에게 맨발로 사방을 누빌 수 있는 장판이 깔린 숙소가 '우리집'으로 불렸던 것처럼. 나와 나의 아이는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을까? 집에서 무엇을 하며 즐거워할까? 집 주변에서 무엇을 하며 즐거워할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의 숙소를 선택하기 위해 먼저 질문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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