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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Sep 30. 2022

여행자의 현지 도서관 사용법

나와 아이들의 캐나다 여행은 현지인처럼 한달동안 살아보기가 목표였다. 우리를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로 가게 만든 빨강머리앤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대서양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겼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관광지 쇼핑이 아닌 그곳의 일상을 살아보는데 할애했다. 숙소를 집 삼아서 주변을 산책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식재료를 구해서 집밥을 만들어 먹었다.


샬럿타운의 '우리집'이었던 아파트 주변에는 놀이터와 도서관, 식료품 가게가 있었다. 운이 좋았다. 처음부터 주변을 검색하고 그곳을 예약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그러했다. 게다가 걸어서 10분이면 멋진 항구와 해변길을 산책할 수도 있다니!


한국의 우리집 주변에는 해변 대신 조그마한 산이 있고, 놀이터가 있고, 가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이 있다. 나와 아이들은 책을 좋아한다. 남편을 포함한 가족들이 모여서 각자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우리집의 흔한 거실 풍경이다. 굳이 어른과 아이의 책을 구별하지 않는데,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책 중에 그림이 많고 관심있는 주제의 책을 꺼내어 뒤적인다. 최근에는 한국사 관련 학습만화를 온 가족이 함께 읽고 있다.


캐나다 샬럿타운에서도 우리는 도서관을 종종 이용했다. 숙소에서 나와 오 분쯤 걸으면 샬럿타운 도서관(Charlottetown Library Learning Centre)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샬럿타운 다운타운 중심지에 위치한 도서관은 깨끗한 외관, 쾌적한 실내 공간, 친절한 직원들이 있는 곳이다. 빌딩 건물의 1층을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가까운 오른쪽 벽면에 네모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는 여러 나라 언어로 인사말이 적혀있었는데 아이들은 '안녕하세요' 단어를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캐나다 샬럿타운 도서관 전경



소설 속 앤도 책을 무척 좋아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이 시작되었지만 전차경주장면의 뒷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던 앤은 '벤허'를 책상과 무릎 사이에 놓고 몰래 읽는다. 그 일로 좋아하는 스테이시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반성하게 된다. 앤은 글쓰기를 좋아해서 작가를 꿈꾸고, 퀸즈아카데미와 레이먼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길버트와 결혼하기 전까지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구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앤이 애서가라는 사실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나는 앤의 가장 가까운 곳에 또 한명의 애서가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싶다. 길버트? 아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이애나!


"저 아이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답니다. 게다가 말릴 수 없어요. 애들 아빠가 저애를 편들어 주니까요. 저애는 눈만 뜨면 책에 몰두해 있으니 친구가 생겨 잘됐어요. 밖에서 노는 시간이 좀더 많아질 테니까요." 처음 만난 다이애너와 앤이 뜰에서 우정 맹세를 하고 있을 때, 베리부인은 머릴러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리 부인은 다이애너가 너무 책을 많이 읽어서 눈이 나빠졌다고 걱정이었다.


"다이애나는 내게 책을 빌려준다고 했어요. 굉장히 재미있고 몸이 떨릴 만큼 가슴이 두근거리는 책이래요." 앤은 머릴러에게 다이애나를 만난 기쁨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이애나는 열한 살의 나이에 책을 읽으며 몸이 떨릴만큼의 감동을 경험한 애서가였던 것이다. 우리는 다이애나를 검은 눈과 검은 머리와 장밋빛 뺨을 가진 예쁜 소녀로 기억한다. 하지만 앤과 '마음의 벗'으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둘다 애서가이며 자연을 사랑하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앤의 시대에는 부모의 생각이 자녀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이애나는 에이번리 학교를 졸업하고 더이상 진학하지 않는다. 몇 년뒤에 결혼해서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반면에 앤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선생님의 삶을 살아간다. 베리 부부는 다이애나가 더이상의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다. 반면에 머릴러와 매튜는 앤이 더 많은 교육을 받기를 원했다. 40대가 되어 소설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머릴러에게 감동할 때가 많았다. 그녀가 매우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매슈 오라버니와 내가 너를 맡을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기로 했고, 교육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고 마음먹었지. 여자는 그럴 필요가 있건 없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릴러는 앤에게 퀸즈아카데미 수험반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며 이렇게 말했다. 앤의 시대에는 여자는 바느질과 집안일을 배우고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는 게 일반적인 삶이었다. 그런데 머릴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을 갖춰야 하고, 교육이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라 판단했다.


나와 남편은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기를 바란다. 억지로 학원이나 학습지를 시키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선택해서 읽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은 책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능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릴러의 생각처럼 교육이 아이들의 자립과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책이 잡아놓은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물고기 잡는 법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우리집' 근처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여행을 하는 사람이 현지 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캐나다 샬럿타운 도서관은 여행자에게 도서대출을 할 수 있는 카드를 발급해 준다.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주소'가 필요하다.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의 주소를 적었다. 주소와 전화번호 등 몇 가지 정보를 적고, 신분증을 대신하는 여권이나 국제운전면허증을 보여주면 그 자리에서 카드를 발급해 준다. 도서관 카드가 있으면 원하는 도서를 대출받아 숙소로 가져갈 수 있다.


여행자도 샬럿타운 도서관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샬럿타운 도서관은 도서뿐만 아니라 영화 DVD, 음악 CD, 각종 악기, 보드게임을 대여할 수 있다. 도서관 내에는 게임룸이 있어서 게임cd와 헤드셋을 대여받아 사용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한 관대함이 조금 낯설었다. 도서관 카운터에 신청해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고, 어린이들은 대부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여행자에게 발급되는 도서관 카드는 도서 대출만 가능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들과 해외 여행을 하면서 현지 도서관을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샬럿타운 게시판에는 여름 프로그램이 안내되어 있었고 카운터에는 팸플릿이 비치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가 샬럿타운에 머무는 동안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 몇 개를 발견하고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신청했다. 공예품 만들기, 레고 만들기, 웹코딩, 요리 등의 수업이 있었으며 아이들은 공예품과 레고 만들기 수업에 참여했다.




현지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현지 아이들과 어울려 활동할 수 있으니 아이들의 영어교육에도 좋은 기회이다. 이밖에도 도서관의 이점은 매우 많다. 한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쾌적하고 시원한 장소이며,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이다.


샬럿타운 도서관은 1층으로 운영되지만 꽤 넓다. 익숙해진 아이들은 도서관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게 되었고 덕분에 엄마는 한 자리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이 책 구경을 하고 몇 권을 들춰보는 동안, 보드게임을 가져와서 신나게 놀이를 하는 시간동안, 나는 아이들 옆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아이들의 공예품 만들기 수업과 레고 수업은 조그맣고 동그란 공간에서 진행되었는데, 사방이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었다. 도서관 내 커피숍에서 코르따도 커피를 사서 교실 안쪽이 잘보이는 자리에 앉아 한 시간정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샬럿타운 도서관은 실내에서 음료와 샌드위치 등 음식을 먹는 일이 허용된다. 그래도 장서가 있는 서가 바로 옆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었다. 커피숍 바와 건물 밖이 훤히 보이는 투명 창문 사이에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도서관 깊숙한 곳에는 서가와 분리되어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다가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와 아이들은 이곳에서 현지에서 구매한 수학문제집을 풀며 간식을 먹기도 했다.



캐나다 샬럿타운 도서관 내부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그곳을 찾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보는 일도 아이들에게 현실적인 교육이 되었다. 중국, 대만, 일본, 중동의 어느 나라 등에서 찾아온 가족들이 도서관을 이용했다. 샬럿타운에서는 좀처럼 한국인을 볼 수 없었는데 도서관에서도 그러했다. 영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샬럿타운 도서관이다.  거리에서도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다만 스쳐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 생김새와 피부색, 말소리가 다른 사람들이 일정 시간을 공유하며 머물러 있다. 외국 아이들은 영어와 고국어를 섞어서 사용했다. 두 아이는 들려오는 다양한 언어에 신기해하며 엄마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다양한 언어가 실재하고 있는 상황 속에 있었고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여행자에게 현지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이용하는 장소가 아니다. 영어책을 능란하게 읽을 수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도 도서관은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그곳은 가장 쾌적하고 편안한 장소일 것이며 아이들에게는 놀이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시간을 통해 낯설고 친숙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샬럿타운 도서관처럼 맛있는 음식점과 커피숍이 되어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여행 기간동안 '책'과 소원해지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비록 책의 겉표지와 안쪽 그림과 쉬운 문장 몇 줄을 읽더라도 그것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우는  무척 소중한 경험이다. 앤과 다이애나처럼 애서가이거나 그렇게 되고 싶은 여행자에게 현지 도서관은 갖가지 보물을 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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