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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Oct 01. 2022

샬럿타운에서 반려견을 위해 준비된 두 가지

샬럿타운 도서관을 가운데 두고 앞쪽 거리는 퀸 스트리트(Queen St.)이다. 뒤쪽 거리는 킹 스트리트(King St.)이다. 여왕이 통치했던 과거 역사를 보여주듯 퀸 스트리트는 다운타운 가장 중심을 지나며,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킹 스트리트에는 나와 아이들이 묵었던 '우리집' 숙소가 있다. 


퀸 스트리트를 따라 계속 걸으면 어느새 해안가에 도착한다. 샬럿타운의 바다는 해수욕을 할 수 없다. 항구에는 수많은 요트가 세워져 있고, 그중 몇 대는 여행객을 태우고 달리기도 한다. 한 시간 남짓 달리면 새로운 섬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검은 독수리와 바다표범을 볼 수 있다. 


먼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샬럿타운에서 동물을 보는 일은 무척 쉽다. 킹 스트리트를 걷다보면 밖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행인을 지켜보는 고양이를 종종 볼 수 있다. 퀸 스트리트 도로 위에는 가끔 갈매기가 앉아 있기도 했다. 가장 자주 볼 수 있던 동물은 바로 커다란 개였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대형견이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볼 수 있었다. 


"개를 길러도 좋을 때가 됐구나." 

어느 가을날 길버트가 말했다. 빨강머리앤 소설에서 결혼한 앤과 길버트는 포 윈즈 항구의 신혼집을 떠나 글렌 마을의 모건 저택 '잉글사이드'에서 살고 있다. 길버트는 남자아이는 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째 아들 젬이 친구네서 받아온 강아지 한 마리를 기르는 걸 허락한다. 작은 강아지 '지프'는 잉글사이드 식구들의 사랑을 받았다. 젬은 지프를 사랑했고 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지프가 오기 전에 나는 어떻게 지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지프는 말을 할 수 있어요, 엄마. 정말이에요. 눈으로 말해요."


나와 아이들이 도서관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을 때였다. 검정색 큰 개와 함께 걸어온 여자가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았다. 의자에 개의 목줄을 묵어두더니 도서관 안쪽으로 들어간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커피를 사러간다며 개를 봐달라고 했다. 나와 아이들은 검은 개를 잠시 지켜보았는데 매우 얌전해서 가만히 서다 앉다만 반복했다. 젬의 강아지 지프가 성장했다면 저 검은 개처럼 커졌을까, 하고 궁금했다. 지프는 잉글사이드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이윽고 여자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나오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건물 벽쪽에 놓여 있던 스테인레스 그릇을 가지고 오더니 검은 개 앞에 놓는다. 둥근 그릇에 물이 담기고 개는 시원하게 목을 축인다. 아, 물그릇이었구나! 나의 앤이 궁금하다며 묻던 질문의 답을 드디어 찾게 되었다. 


샬럿타운 도서관에 놓은 둥근 그릇



"저기 있는 둥근 그릇의 용도는 무엇일까?" 며칠 전, 나의 앤이 질문을 던져왔다. 쫙 펼친 성인의 엄지 손가락부터 새끼 손가락까지의 길이를 지름으로 하는 둥근 그릇이 벽 쪽에 놓여 있었다. 그릇의 생김새는 익숙했지만 덩그러니 놓인 상황은 낯설었다. 


생각해보니 둥근 그릇을 다른 장소에서도 본 적이 있다. 해변가에 있는 플로우팅 푸드 코트에서 포테이토 프라이를 곁들인 랍스터롤과 핫도그를 주문할 때 발 밑에 놓은 그릇을 보았다. 강아지 용품같아서 이곳에서 개를 키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료 그릇인데 아직 밥 줄 때가 안되어서 비어있으리라 짐작했다. 도서관 외부 테라스에서 나의 앤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는 도서관에서도 개를 기르나? 하고 생각했다. 


그릇의 올바른 용도가 물그릇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그릇이 유독 눈에 띄었다. 어느날은 벽에 바싹 붙어 있고 어느 날은 조금 떨어진 거리에 놓여 있었다. 저마다 사용을 하고 적당한 자리에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관 건물 앞 뿐만이 아니었다. 퀸 스트리트 거리를 걷는 내내 곳곳에서 물 그릇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명 기념품점인 앤 오브 그린게이블즈 초컬릿 상점 앞에도, 푸드 홀 입구에도, 모양은 조금씩 달랐지만 필요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용 물그릇이 놓여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에 신기해 하며, "여기도 물그릇이 있어!"하고 숨은 물그릇 찾기 놀이를 했다. 



샬럿타운 건물 앞에는 그릇이 놓여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앤과 길버트의 아이들은 '잉글사이드'와 글렌 세인트 메리 못 사이에 있는 단풍나무숲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뒤쪽으로 '무지개 골짜기'라고 이름 지은 골짜기가 있었는데, 어린 가문비나무숲이 있고 그 한가운데 풀이 우거진 빈터가 펼쳐졌다. 빈터는 시냇물의 둑과 이어져 있고, 시냇가에는 은빛 자작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무지개 골짜기의 빈터는 잉글사이드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놀이터였다. 


캐나다 샬럿타운은 녹지가 가득하다. 킹 스트리트를 걸어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공원이 있는데, 양 옆으로 잡아 늘어트린 것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한쪽 끝에는 미끄럼틀과 그네,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던 뱅뱅 도는 의자 등 놀이 시설이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놀이터 주변에서만 놀다가, 이삼일쯤 지나서는 반대쪽 끝까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깔깔거리며 넓은 잔디밭을 뛰어 다녔다. 


"여기 물 먹는데 있어!" 반대편 끝 쪽에서 아이들이 발견한 것은 파란색 기둥 모양으로 된 음수대였다. 공원에서 놀다가 목이 마르면 숙소에서 가져 온 물을 마시고, 그걸 다 마시면 물을 가지러 숙소에 다녀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공원 안에 음수대가 있었다니. 



사람과 반려견이 동시에 사용하는 음수대



"어, 이게 뭐지?" 파랑 원통형 음수대 아래 쪽에 또 하나의 물그릇이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이내 그것이 반려견을 위한 음수대라는 걸 알아차렸다. 파랑 원통 중간에 설치된 둥근 은색 버튼을 누르니 그곳에 물이 채워졌다. 콸콸 채워지는 물을 보며, 훕훕하고 마른 목을 축이는 강아지의 모습이 상상되어 기분이 시원해진다. 


소설에서 앤과 길버트의 첫째 아들 젬은 지프가 죽고나서 개에게 사랑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길버트가 데려온 작고 까만 강아지가 사라졌을 때도 동생 월터만큼 슬퍼하지 않았다. 하지만 젬은 시간이 지나자 상처가 사라지고 또다시 개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갈색 귀, 갈색 코, 갈색 꼬리와 아름다운 갈색 눈을 가진 개 '브루노'를 처음 본 순간 사랑하게 된다. 브루노를 집으로 데려오던 날, 젬은 이렇게 기도한다. "온 세상의 사람도 물건도 모두 좋아. 하느님, 온 세상의 개와 고양이를 한 마리도 남김없이 지켜주세요. 특히 브루노를 지켜주시기를."


하지만 이번에도 젬은 '나의 개'를 갖는데 실패한다. 브루노는 원래 주인이었던 소년 로디를 잊지 못했고, 결국 다시 로디에게로 돌아간다. 앤은 젬에게 "오직 한 사람밖에 좋아할 수 없는 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뒤 몇 년이 흐른 뒤 젬은 강아지 '먼디'의 애정을 독차지하게 된다. 



샬럿타운 거리에서 크고 작은 개를 자주 만난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능한 모든 일을 개와 함께 한다. 샬럿타운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애견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거리에서 대형견의 목줄을 바싹 당겨 잡고 걷는 사람들과 흔하게 마주친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와 목줄을 한 애견을 함께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공원이나 해변가에서는 애견과 함께 조깅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처음에는 흠칫거리던 나와 아이들도 차차 적응이 되어 대형견 옆을 자연스럽게 지나다녔다. 물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신기한 일은 한 달동안 캐나다 거리에서 크고 작은 많은 개를 만났지만, 나와 아이들을 보며 짖는 개는 한 마리도 없었다. 다들 주인을 바라보고 멈춰있거나, 주인과 함께 갈 길을 향해 걷고 있었다.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여러 마리의 개를 바라보며 어떤 개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를 논할 여유까지 가질 수 있었다. 


샬럿타운 해변가 플로우팅 푸드 코트에서 주인 옆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던 대형견이 생각난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라서 테이블 간격이 좁았다. 개의 커다란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는 살짝 운동화를 들어올리고 있었는데, 개의 꼬리가 바닥과 운동화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나와 아이들은 피자를 먹으면서 혹시라도 개의 꼬리가 운동화에 밟힐까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주인에게 말해야하나 고민이 될때쯤 식사를 마친 그들이 일어섰다. 개도 함께 자리를 떠났다. 휴, 마음이 놓였다. 


캐나다 샬럿타운에서는 음식점이나 거리 등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도 대형견이 이질감없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마치 사람인듯이, 사람들 바로 옆에서 걸어가고 바로 옆에 앉는다. 버스킹 마술 공연을 관람하고 있을 때도 주인 곁에 얌전히 앉아 있는 대형견이 보였다. 주인은 가끔씩 애견을 쓰다듬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개들은 전혀 짖지 않고 얌전했다. 흠짓거리며 개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샬럿타운 해안가로 산책을 가는 대형견



한국의 집 근처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잔디밭이 있어서 아이들과 가끔 뛰어놀곤 한다. 그런데 어둑해서 잘 분간이 안될 때를 제외하면 거의 매번 개똥을 발견한다. 지난 가을 어느날에는 유독 개똥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뒤로 왠지 그곳에 발걸음이 닿지 않는다. 캐나다 샬럿타운 숙소 근처 공원은 훨씬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똥을 발견한 적이 없다. 단지 두 곳을 비교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개들이 다닐 수 있는 잔디밭을 걸을 때면 으례 개똥이 있을까봐 발 빝을 살피게 된다.


한국에서는 멀리서 개가 보이면 돌아서 갈 길을 찾곤 한다. 대형견은 쉽게 볼 수 없으니 두렵고, 작은 개들은 갑자기 짖을까봐 긴장이 된다. 언젠가는 한 손에 물건을 들고 걸어가는데 작은 강아지가 나를 보더니 짖기 시작했다. 주인이 목줄을 당기며 하는 말이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짖는단다. 하, 마음이 답답해진다. 


"얌전한 개들만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거 아닐까?" 샬럿타운을 걷는 동안 만났던 개들이 사람을 위협하거나 짖지 않는 사실은 아이들에게도 신기한 일이었다. 첫째 아이는 그 이유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다. 아이가 말한 '얌전한 개들'이란 '훈련이 잘 된 개'라는 의미이다. 훈련이 잘 된 개들만 밖으로 데리고 나올 거라는 말이었다. 


아이의 말처럼 개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올바른 훈련이 필요하다. 애견을 위한 음수대가 마련되고 물그릇이 놓여 있는 문화를 모든 애견인이 바랄 것이다. 내 집 밖에서 그릇에 담긴 물을 대접받을 자격은 예의를 갖춘 개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일정한 시각에 두 마리 개가 우악스레 짖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베란다 밖에는 유모차를 밀고 가는 사람과 유모차에 탄 작은 갈색 개 두 마리가 보인다. 맞은편에는 목줄을 한 하얀 개가 주인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유모차가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짖는 소리가 멈춘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다시 한번 멀리서 두 마리 개의 소리가 들릴 때도 있는데, 어디선가 다른 개를 만난 모양이다. 애견을 유모차에 태워가며 산책을 시키는 주인의 정성과 험상궂게 짖는대도 제지를 하지 않는 모습이 맞물리지 않는 두 개의 블럭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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