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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Nov 08. 2022

나의 조그만 거미에게

너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창밖에서 떨어져버렸구나. 안녕, 거미야.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에 촘촘한 거미줄을 만들어 매달려 있을 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꼭 그러기를. 15층 높이의 우리집 베란다 창밖에서 떨어진 너의 생사를 아이들도 걱정하고 있단다. 어느 푹신한 나무잎 위에 안전하게 떨어져서 잘 살고 있기를, 부디 꼭 그러기를. 



Photo by Rafael Garcin on Unsplash



여름이 끝날 무렵, 그러니까 나와 아이들이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에 베란다 창밖에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투명한 실로 만든 거미줄이 잘 보이지 않아서, 마치 거미 혼자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듯 보였다. 사실 나는 거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절지류, 파충류, 양서류 등 대부분의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징그럽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거미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창밖에 매달려 있었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 창밖에 집을 지은 거미라니. 새도 아니고 여기까지 어떻게 이동해왔을까. 게다가 거미의 먹이가 될 만한 벌레들이 이렇게 높이 날아다니기는 할까. 사람들이 고층 아파트에 사는 장점 중 하나는 모기 등 벌레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거미줄에는 며칠 동안 벌레 한 마리 걸려들지 않고 있다. 아이와 나는 거미의 생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집 안쪽에, 그러니까 베란다 창 안쪽에 집을 짓고 있었다면, 분명 거미를 내쫒았을 것이다. 하지만 창밖에 집을 지은 거미를, 징그럽게 느껴지는 거미를 나는 묵인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고층 창밖으로 물건을 사용해 거미집을 떨어내는 일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더 큰 이유는 창밖은 나의 사적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창 안쪽에, 거미는 창 바깥쪽에, 그렇게 베란다 창을 사이에 둔 동거가 시작되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거미는 거미줄과 베란다 창 사이로 이동하고 있었다. 베란다 창을 등지고 거미줄을 만들었던 것이다. 앞은 투명한 거미줄로, 뒤는 베란다 창으로 막힌 안전한 집이었다. 거미의 총명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폭풍의 영향으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거미가 창문에서 사라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 보았다. 드디어 거미를 찾았다! 베란다는 이중 창으로 되어 있는데, 두 창문의 세로 샤시 사이에 거미가 숨어 있었다. 거미 한마리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좁은 공간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것이다. 비바람이 그치자 거미가 샤시에서 빠져나와 거미집 가운데로 돌아갔다. 


비가 오던 다른 날에는 거미가 거미줄 가운데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기에 아이들은 거미가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비를 맞으며 온몸이 축 늘어져 있는 거미의 생사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 거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자로 길게 늘어져있던 다리가 다시 접히고 거미가 움직였다. 세찬 바람은 샤시 사이에서 피했지만, 비는 그대로 온몸으로 견디고 있었나보다. 


어느날인가 나와 아이는 거미의 종류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아이가 책장에서 자연관찰책 중 한 권을 꺼내들었다. 제목이 거미였다. 책장을 넘기며 거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찾았다! 몸통이 노란색으로 줄무늬가 있고, 다리도 검정과 노랑이 교차되어 있는 책 속 거미 그림과 우리집 거미의 모습을 번갈아 확인했다. 바로 '무당 거미'였다. 무당 거미는 한국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거미의 종류로 가장 흔하게 발견된다고 적혀있었다. 암컷이 20-30mm, 수컷이 6-10mm라고 하는데, 우리집 베란다 창밖 거미는 암컷인 듯했다. 지금 우리집 베란다 창밖에는 무당 거미 암컷이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내친김에 이름도 붙여주기로 했다. 어떤 이름이 좋을지 후보작이 오고 갔지만 만장일치를 얻지 못해서 좀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름을 결정하기도 전에 거미가 사라졌다. 


"엄마, 거미가 죽었어!"

오전에 집근처 대학교의 교실에서 바리스타 필기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두 아이가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거미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거미가 죽다니? 왜? 현관에서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며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의 나를 보며, 남편이 설명을 거들었다. 오늘 아침 고압 스프레이 청소 작업을 하던 사람이 거미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새 옷을 입으려 준비중이었다. 나는 며칠전부터 페인트 칠 관련해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청소를 먼저 할 거라고 생각치 못했다. 만약 알았더라도 넓은 베란다 창문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거미집에 변고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문은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공간이 아니니까. 


"아저씨가, 물로 쏴서 떨어졌어."

두 아이는 계속해서 거미의 최후 모습을 나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거실 안쪽으로 들어가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나의 작은 거미가 사라지고 없었다. 죽이지 마시오, 라고 적은 종이라도 붙여 놓을 껄. 거미를 지키지 못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거미가 사라지는 순간, 작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 있는 거미는 성가신 존재로 보일 것이다. 그것을 치워주려는 아저씨의 호의가 고압 물총에 실려 세차게 날아왔고 거미는 아래로 떨어졌다. 아저씨의 선의가 아이들의 울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나의 마음에도 속상함이 밀려들었다. 한동안 멍하게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실에 거미의 식량이 된 말라버린 벌레 사체가 몇 개 매달려 있었다. 정확히 거미만 가격하여 떨어뜨리고, 거미줄과 벌레 사체는 그대로 둔 아저씨의 호의가 또 한번 못마땅했다. 거미가 우리집 베란다에 집을 짓고 아무것도 없던 거미줄에 말라버린 형체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은 세 개의 형체가 매달린 후였다. 거실 쇼파에 앉아 문득 고개를 돌려 거미줄을 바라보았따. 거미보다 조금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얇은 다리를 바둥거리고 있었다. 불쌍하다는 감정과, 거미가 드디어 식량을 얻는구나하는 기쁨의 감정이 뒤엉켰다. 다행히 그 모든 상황은 고층의 넓은 베란다 가운데 창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집안에 사는 내가 관여하기 힘든 위치였다. 나는 그대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거미가 벌레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벌레의 몸을 빙빙돌리며 실을 휘감았다. 실에 갖힌 벌레는 버둥거리기를 포기했고, 거미는 그것을 약간 위쪽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머리를 그곳에 한참동안 대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거미는 벌레를 빨아먹는 방식으로 섭취를 한다고 했다. 얼마간 움직이지 않던 거미가 다시 몸을 움직여 항상 머물던 자리로 옮겨갔다. 그때 나는 하나씩 늘어나던 마른 형체들이 벌레의 사체였음을 깨달았다. 거미줄에 낙엽 부스러기가 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미의 식량을 걱정했던 나였다. 벌레가 잘 잡히지 않을 고층 베란다 집주인으로서 거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토록 벌레 잡이를 꾸준히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낯설고 징그러운 장면이지만 안도감이 느껴졌다. 어느새 익숙해진 거미에게 애정 비슷한 감정이 생기고 있었던 듯하다. 


어느날 아침은 거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간밤에 잘잤니? 거미가 밤새 잠을 자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나는 그저 그녀의 평안을 바라며 인사를 건넸다. 거미는 나와 아이들의 애완 동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손이 가지 않고 자립하는 애완 동물이었다. 마치 인간과 형태만 다른 또다른 이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거미는 베란다 창문 공간에 투명한 거미줄을 조금씩 넓혀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활을 관찰하게 해주는 것으로 임대료를 지불했다. 아이들은 하교 후에 나와 함께 거미를 지켜보며 호기심에 들떴다.


고압 스프레이 물총이 거미를 가격한 날, 주인없는 거미줄에 노린재 한 마리가 찾아왔다. 투명한 거미줄은 곤충들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가보다. 노린재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 때문인가, 하고 생각했으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거미줄의 끈적임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 노린재는 계속 버둥거렸지만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오전에 거미가 떨어지는 장면을 목도한 아이들과, 그 소식을 몇 시간전에 전해들은 나는 그날 오후 내내 허전했다. 노린재에게 미안하게도 그의 생사보다는, 거미가 있었다면 맛있게 먹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층에서 떨어진 거미가 살아서 지금쯤 새로운 집을 짓고 있기를 바랐다. 


먹이 사슬은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생명의 보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포식자가 사라진 거미줄에 걸린 노린재는 피식자의 운명을 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강력한 끈적임에 달라붙어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구해주어야 할까? 선뜻 나서지 못한데는 고층 베란다 창밖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것도 커다란 창 한가운데였다. 그런 이유로 집을 짓는 거미를 방관했었다. 지금은 노린재를 방관하고 있다. 


몇 시간이 지났지만 노린재는 여전히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 이제는 더이상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거미집에서 가장 가까운 베란다 창을 열었다. 긴 막대를 찾아 들고 노린재 구출을 시작했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노린재를 무사히 내려놓고, 거미줄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거미줄은 생각보다 무척 질겼다. 이정도이니 벌레가 살짝 닿기만 해도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몸에 붙은 거미줄에서 벗어난 노린재는 실외기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랜 사투로 고단했으리라. 좀더 일찍 구해줄껄 하는 후회가 일었다.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던 노린재가 앞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20센치 남짓 되는 실외기 위를 천천히 걸어 그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휘리릭! 날개를 펴 허공으로 사라졌다. 


긴 막대를 든 김에 아직 남겨져 있는 거미줄과 마른 형체들을 모두 치웠다. 이제 베란다 창밖에는 아무도 없다. 거미도 그녀의 집도 모두 사라졌다. 베란다 창밖으로 크고 작은 나무들이 보인다. 저곳 어딘가에 집을 짓고 있을 나의 조그만 거미야, 고층 베란다보다 벌레가 많이 오가는 낮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생각할께. 세찬 물줄기에 맞을 때 많이 아팠겠다. 네가 무당거미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길을 걷다가 너의 친구들을 자주 목격했단다. 낯선 곳에 떨어져서 어리둥절했겠구나. 하지만 네가 떨어진 그곳에도 무당거미가 살고 있는 걸 보았어. 세찬 비바람이 불면 나무 속으로 숨을 수도 있고, 여러모로 그곳이 네가 살기에 적당한 장소인 것 같아. 나는 여전히 거미를 징그러워하지만, 적어도 우리집 근처 무당거미 앞에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 혹시 너일수도 있을테니까 말이지. 부디 살아있기를, 꼭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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