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한국:일본, 본질적 우위에서 전방위적 우위로

전방위적 요소의 고려, 한국, 일본, 문화, 경영, 의사결정

by 김동주 Don Kim


"마케팅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판매자는 마케팅을 할 것이고, 역설적으로 소비자는 마케팅 세뇌로 인한 선택의 휘둘림을 최대한 막아야 스스로의 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쿠라바, 이치로, 엑스재팬, 일식, 렉서스, 사무라이 문화, 천년 우동집 등... 뛰어난 것들이 많은데, 그것이 본질적으로 더 위대한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화에 걸친 오랜 체험을 통한 깊은 수준의 통찰과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고급 와인과 음용용 차들의 어필 논리와 그 어필력의 실체에 대한 분석 자료 및 주관적인 소믈리에의 와인 평가와 그 에러 등에 대해 나는 대단히 관심이 많다. 또한 나는 인간의 시장논리적 관점에 기반한 판단 기준보다 더 객관적인, 자연이 주는 메리트의 양을 기준으로하는 팩트 자체에 기반한 판단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고등어가 조기보다 더 영양이 풍부함에도 어획량의 차이에 따른 수급에 의한 인간사회 내에서의 가격 결정으로 인해, 고등어가 통상적으로 조기보다 저렴하다. 나룻배 시절의 고등어는 먼 바다로 나갈 수 없어 매우 값 비쌌지만, 모터 장착 이후 나갈 수 있게 된 조금 더 먼 바다에는 방대한 양의 고등어가 있어 그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버려지던 랍스터도 유사하다. 나는 같은 가격일 때에도 (조기의 부서지는 식감보다 고등어의 그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맛 자체와 영양적 측면의 우위로 볼때 고등어가 더 합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여럿이 식사를 하는 나는 맛과 과정 등에 관대하다. 나 혼자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반대로 온전히 혼자의 나는 매우 민감한데,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위 맨 첫 줄의 열거물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슴프레이 관통하는 유사한 속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쓰이는 정말 고질라였나? 엑스재팬이 정말 그들의 음악을 한건가, 아니면 늘 그렇듯 글로벌적 정면 도전이라는 슬로건하에 서양 수퍼밴드 코스프레를 한건가? 예전의 렉서스 LS는 진정한 마스터피스라고 믿으나, 지금은? 이 세 가지에 대해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나막신과 훈도시와 유카타가 전통의 지속 외에 어떤 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건지 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많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새로움과 WOM(입소문)은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다.


식당으로 가보자. 일본의 밥을 정성스레 푸는 것과 한국의 묵혀두는 공깃밥도 목적의 차이로 인한 것이라 믿지, 근본에 대해 잘 모르면서 식감 등으로 한쪽을 일방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나는 불편하다.

방대한 분야에 걸친 소소한 퀄리티 차이를 우열로 오류 인식,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나도 한때 스고이하며, -렉서스가 잘 반전해줬으나-일본이 위대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가졌던 내 생각의 오류를 직면하며 반성한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돌진중인데 10번 점화 시 3번 폭발해버리는 셔틀이 낫지, 100만킬로 내구성의 자동차는 쓸모 없다.


퀄리티는 중요하나 상황과 패러다임은 더 중요하다.

쳐들어 오는데, 불 끄고 천자문 잘 써봐야 뭐하나.

source http://www.carscoops.com/2013/11/japanese-interwebs-make-fun-of-lexus.html?m=1

(위 사진은 그냥 가벼운 농담이다.)


불을 한 가운데 놓고 푸짐한 육류를 조리해가며 함께 드는 경험을 두고 어떤 이는 원시적이고 직관적이며, 무엇보다 그 결과물인 맛이 충격적이라 바바리안적 본능을 충족하는 먹거리다워 숭고하다고까지 표현했다. 보통의 외국인을 이런 류의 음식 앞에 앉히고 얼굴을 관찰해보면 느껴지는 그것. 나는 그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750년 된 우동집의 우동을 먹고 충격을 받거나, 인생 우동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간장과 생 와사비를 곁들인 고급 사시미를 먹어보며 그 맛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면, 세련됨 측면에서 느껴지는 나의 뒤쳐짐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맛의 한계도 느껴져, 수 천년 앞선 본질적 우위가 어렴풋이 현상(develop)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100년 앞선 서구 문물 토착화의 결과로, 80년 전 이미 비행기와 항공모함을 포함한 막강 함대로 진주만 침공을 감행한 저력은 부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백제 도공들을 더욱 우대하여 데려간 일본. 그것이 곧 일본 문화의 포장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그들 문화에 기여한 큰 부분 중 하나의 작은 파편에 불과하다.

(고백하건데, 이런 일관된 세련된 허접함의 관통을 발견하고 혼자만의 사색을 하다보니 하루키의 세밀한 감정 묘사의 문체까지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부정적 인식은 옳지 못하다고 느꼈기에 거기서 생각의 기차를 끊어버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노나 치기어린 반일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장점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다만, 그들이 강조하는 장인 정신이, 깊히 파보면 과도하게 찬미케하는 성질이 다분한 마케팅적 자화자찬 또한 있다는 것이다. (단언컨데, CD Map상의 고등어의 포지션을 모르는 한 사람을 대상으로, 고등어가 대단히 값 비싸고 희소한 생선이라는 세뇌를 할 시간을 내게 하루만 달라. 그가 인생 피쉬를 만났다는 확신을 하도록 자신한다.)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는 일본 상점 특유의 예쁜 한문체와 환영하는 고양이, 벽에 가지런히 걸린 나무 메뉴, 한지 바른 갓 등 아래로 하나씩 내어오는 이쁜 그릇에 담긴 음식들,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절묘하게 엮은 분위기들... 그런 일본적 패키징의 패턴을 깊숙히 관찰해보면 특유의 팬시함은 가득하나, 그 이상은 없는 공허함도 엿보인다. 그들만의 배경이 있겠지만 그런 좁고 앙증맞은 세계관이 갑갑하다. 한 국가 전체를 관통하는 대중식당들에서 테이블에서 불 때가며 즐기는 음식문화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한데, 호쾌함의 측면에서 그 이상의 만족은 얻기 어려운 한국이 내 뿌리의 근본이기에 갑갑함이 느껴졌겠지만 말이다.


사기 그릇에 잘 담아낸 일본 요리. 맛없게 먹은 적은 별로 없지만, 좁은 맛 스펙트럼으로 인해 매우 맛있다고 느낀 적은 또한 몇 번 있었나. 또 멜라민 그릇에 기분이 나빠져 그것에 담긴 음식 자체는 얼마나 폄하했었나 반성한다. 통찰력없이 짖어댄 한 일본 언론인의 비빔밥 디스... -다 섞어놔서 헷갈리는 맛이라고 폄하하는 식인데, 그럴꺼면 다 반찬으로 나눠서 한식을 먹거나 간장과 밥등 원재료 전부 독립적으로 따로 먹던지, 왜 돈부리는... 저런 언론인을 보듯,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내가 경험한 일본인들 대부분은 드러내지는 않지만 매우 감정적인데, 감정이 개입하면 반론을 막는건 불가능하다- 쇼맨십 만큼의 타격을 목격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약하기 때문에 더 악랄히 짓밟았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썩어도 준치인, 우리의 몇 배인 세계 3위 경제 대국임에도 거동은 그에 걸맞지 않은 느낌...


어쨌든, 우리는 강하다고 말하기 어렵고 좀 더 먼 길을 가야할 수도 있다. 우리의 본질을 더욱 꽃 피우기 위해, 이제는 잘 설계한 청사진의 포장이 필요하며, 그들 얼굴의 무겁게 짓눌린 비장함도 조금은 걷어내야 한다. 승리가 행복을 앞서지는 못하며, 행복의 동반은 위태로운 비장함을 언제든 앞설 수 있다.



(어느 한 분의 일본에 편향된 글을 보고, 반론으로써 대칭적 측면이 떠올라 이야기 한 것이다. 맹세하건데, 우열의 논리는 이 글의 취지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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