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 세계관은 죄악이다.
일본과 일본인은 나쁜가?
이 단순한 물음에 간단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로써 '힘' 없는 사실만큼 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있을까?
애민과 부국강병은 잊은채, 세월의 당연한 관성 속 타성에 젖어있던 나라. 정복이나 모험의 창조적, 팽창적 로드맵은 부재했고, 그저 그 속에서 편가르기의 이전투구로 연명했던 그들의 순진한 소꿉장난 세계관.
당파싸움에 끼어들거나 타락한 왕조에 부역한 이들은 처단되어야 함에 마땅하나 그들의 타성에 젖은 게으른 사고와 외부로의 모험을 두려워 한 폐쇄적 세계관의 원죄에서도 벗어날수 없다.
이너서클안에서 밟고 일어서려는 생존을 위한 발버둥의 반만 외부에 쏟았어도 진작 제국의 젖과 꿀을 맛봤을수도 있다. 시기와 질투와 모략을 하거나 외세에 협조한 기회주의 무리를 청소하지 못한 한이 오늘에 이어져온다.
배신자의 처단에서 프랑스는 교과서이다. 종전 직후 바로 청소했어야 할 친일승냥이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 자손들을 지금이라도 거리로 끌고나와 욕보이고 처단해야 완전한 National Reset이 될텐데, 그건 매우 두테르테적이고 현실적으로 어려울테니 친일과 재벌의 힘겨운 사회적 짐을 계속 짊어져야 하겠지.
일본에 대한 반성과 사과 촉구는 굳건해야하나, 김성주의 의견이 아주 틀린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제사회에서 허약과 대비부실은 죄이다. 자꾸 협력과 포용을 내세우는데, 죽은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살아있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보고 거기에 우리가 가끔 목격할만한 공감능력과 지능낮고 평범한 여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가 노년들의 과거 노스탤지어 혹은 부정선거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현상은 토악질이 나기 충분하다.
배신자 청소를 건너뛴 게으름은 멸망때까지 계속 괴롭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