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인생철학, 내려놓기, 미니멀라이프,
나는 항상 유튜브로 아프리카 보츠와나, 시베리아의 타이가 삼림, 열대 우림지역 등 지구 곳곳에 퍼져 살아가는 다양한 동물들의 비디오 보기를 즐겨왔다.
결코 안전한 지대가 없는 동물들을 살펴보면, 끊임 없이 주위를 둘러보며 잡아 먹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눈과 가슴으로 삶을 살아간다. 나는 그런 순간의 그 친구들 속 마음이 어떨까 항상 궁금하다.
가을 도토리를 주워 겨울에 일용할 양식으로 쓰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와 포식자의 시선에 노출되기 쉬운 평지에서 끊임 없이 주위를 둘러보며 도토리를 입 안에 넣고 냅다 달리는 다람쥐를 보면... 본능적인 삶의 의지가 너무도 강렬해 뭉클하기까지 하다. 한 치의 실수는 곧 죽음이라고 본능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겠지...
이런 다람쥐의 모습을 관찰할때면 귀여움을 넘어 숭고함이 전해진다.
먹이를 주는 이에게 꼬리를 흔들며 복종하고 사랑까지 전해주는 개의 경우를 보면, 즐거움을 넘어 안쓰러울 정도인데, 나는 그것이 비굴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비굴함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기에 비굴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오류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먹어야 한다는 숙명을 뇌와 살과 뼈 모두에 알알히 박힌 본능으로 알기 때문이겠지...
재해와 위기에 살아남고, 생명을 지속하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부여된 숭고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끼리 죽이고 죽음 당하는 것 또한 폭력이라 재단할 수 없는 자신과 집단의 생명 유지를 위함이어서, 잔인함보다는 엄숙한 살육이며, 숭고한 삶의 과정이라는 느낌이다.
우리 모두, 이런 동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내달리는 이유의 본질은 두려움이기에...
작년 말 경부터 빛과 공간, 중력 등의 물리학 관련 책과 영상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빛이 질량에 의해 구부러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몰입 하다보니 그 어떤 즐거움보다 흥미로웠다. 나이가 먹으며 내 주변을 둘러싼 사물과 생명들, 현상과 자연에 대한 내 안의 본질적인 끌림이 불현듯 찾아온 느낌이다.
조금 지나 행성, 태양계 등 우주에 관한 다큐를 즐겨보게 되었다. 크기 가늠이 불가능한 은하계에서, 비교적 가까운 이웃 태양계.
1초에 31만km, 빛의 속도로 4년.. 지금 우주선을 타고 가면 150,000년 후, 한 세대가 100년을 산다 가정하여도 나의 1,500세대 이후의 후손이 도착 하는 별, 엡실론.
이 곳의 생명체가 지구를 향해 지금 채널을 동기화한다면 2014년 2월의 뉴스가 도달하겠지.
이런 거대한 공간의 이야기를 접할수록 자연과 우주의 경외감과 더불어 내 인생도 넓은 시야와 큰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좀...눈 감을 때 여한 없이, 남에게 너그럽게... 나에게는 진실하고 성실하게, 내 본연의 우주 티끌 존재에 걸맞게, 우주적 시야로는 숲 속의 한 마리 다람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내 본연의 생명 임무에 충실하게...열심히... 그리고 사람이니까 조금 더 웃으며, 너그럽게... 그렇게 살다 눈 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종교니 이슈, 갈등, 지나친 이익 추구, 분노, 서운함...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찾아올테니 이런 가슴 아픔과 상처도 꼭 아물어야하고, 치유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정리 안되면 어때, 전쟁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고 처형 당해 먼지가 된 수천만의 인류 선조들도 모두 피 맺힌 절규의 사연은 있었으리라... 결국 다 먼지(earth)...
빌게이츠는 역사에 남으려고 인류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도 결국 별거 아니다. 백년 전의 고종 황제에 대해 우리는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얘기도 수 만년의 인류 역사와 하루가 다르게 가속하는 초현실적인 현재의 변화 속도를 생각하면 금방 묻혀버릴 것이기에 그닥 와닿지 않는다. 나는 지속성과 불멸성, 내구성, 희소성 등을 삶의 우선가치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유한한 명예조차 시간을 관통하면서 종국에는 별 의미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유한한 내 생명이 지속하는 한, 그냥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자연스럽게 추출되는 것 같다. 유한하니까 '대충 살자'가 아닌, 유한하기에 나의 일 분 일 초가 너무 소중하다.
주어진 운명대로, 소중히 태어나 주어진 ‘나’라는 한 생명의 잉태 이유에 적어도 지구 곳곳의 열악한 야생의 두려움속에 생존하다 죽음으로써 지구 자연의 사이클로 돌아가는 수 만종의 동물들처럼...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자란 생각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