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고영 양계장

by 고동운 Don Ko

구파발로 이사를 간 후 얼마 동안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땅장사를 했다. 시골 땅을 사서 서울 사람들에게 되파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시골길을 다니는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샀다. 누이와 동생들이 학교에 가고 난 후 늦은 아침을 먹고 어머니는 거실에 앉아 화장을 했다. 나는 그때 ‘폰스’ 크림과 ‘코티’ 분의 냄새를 알게 되었다. 화장을 한 어머니는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아버지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앉아 복덕방으로 출근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들으면 거북한 내용의 대화는 일본말을 섞어서 했는데, 나는 대충 눈치로 어떤 내용의 이야기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


땅장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입이 들쑥날쑥하며 금방 돈이 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에게는 좀 더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양계업이었다. 뒷마당에 축사를 짓고 병아리 300여 마리로 양계장을 시작했다. 알에서 갓 부화한 병아리와 함께 병아리 기술자가 왔다. 처음 얼마간 그는 방에서 병아리와 함께 살았다. 병아리를 축사로 옮긴 후에도 얼마간 더 클 때까지 그는 우리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일본어로 된 관련 서적을 보며 양계와 농사일을 공부했다. 닭의 건강과 사료비를 아끼기 위해 아카시아 잎과 개구리를 먹이기도 했다. 근처 산에 올라 아카시아 잎을 따다가 작두로 잘게 썰어 사료와 섞어 먹였다. 동생이 잡아 온 개구리도 같은 방법으로 사료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알을 낳기 시작하자 시장에 판로를 열어 내다 팔았다. 30개들이 종이난좌에 (계란판) 담아서 시장에 가져갔는데, 난좌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어느 양계장 것이라는 표시가 필요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고영 양계장’이라는 상호다. 어머니는 물감으로 종이 난좌에 상호를 적어 넣었다.


아버지는 벌통도 여럿 들여놓아 꿀과 로열젤리도 채집했다. 달걀은 하나씩 저울에 달아 대중소로 나누어 팔았고, 노른자가 두 개 든 큰 것들은 특란이라고 돈을 더 받았다. 소문을 듣고 싱싱한 달걀과 로열젤리를 사기 위해 차를 타고 찾아오는 부잣집 여인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화초에 좋다며 닭똥 말린 것을 덤으로 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책을 보고 연구하며 나름 성공적으로 농장을 꾸려갔다. 그런 아버지가 나의 장애에 관해서는 전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다. 아마도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그런 DNA 가 내 몸속에도 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힘든 일이 있으면 외면하려고 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마치 모르는 척 내버려두면 그 일이 스스로 해결되거나 사라질 것처럼…


아버지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진급을 한 탓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20대 중반에 중대장이 되어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늘 부하를 거느리는 상관으로 살았다. 게다가 해병대는 인원이 적어 동년배 장교의 수도 적었으며 학연과 지연이 없는 실향민이었던 아버지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가족이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다. 다른 집 아버지들은 밤늦게 돌아오는 날도 있고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은 아이들을 위한 간식거리를 사들고 오기도 했다는데,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어머니가 장에서 사 온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때는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정전이 잦았다. 정전이 되면 TV 도 볼 수 없으니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아 아이들에게 노래를 시켰다. 맥주를 마시던 아버지는 우리에게도 한 모금씩 먹어 보라고 캔을 돌리기도 했다.


집에는 흑백 TV 가 한대 있어 늘 채널 다툼이 있었다. 그때는 한국어로 더빙을 한 미국 드라마가 많았다. 남자들은 서부극이나 전쟁물을 좋아했고, 여자들은 멜로드라마를 좋아했다. 어른들은 가요가 나오는 프로를 , 아이들은 청바지와 통기타가 등장하는 프로는 좋아했다. 그래도 큰 다툼 없이 서로 절충하고 양보하며 잘 지냈다.


요즘 우리 집에는 TV 가 2대, 식구들 모두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 어떤 때는 각자가 방에서 따로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가끔은 식구들이 올망졸망 모여 앉아 같은 스크린을 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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