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동생이 어머니 짐을 정리해서 앨범을 가져왔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수도 없이 이사를 다녔고 전역 후에는 집을 수리해서 파는 집장사를 하느라고 이사를 다녔고 벽제에서는 안채를 영업장소로 내놓고 뒷채로 이사를 했고 미국에 이민 와서도 LA에서 밸리로 밸리에서 벤추라로 그리고 다시 밸리로…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던 앨범이 마침내 우리 집에 왔다.
달랑 원베드룸 노인 아파트에 새로 가구를 들여놓느라고 짐을 추리다 보니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어 부모님 살아생전에 정리를 하자고 동생이 들고 온 것이다.
60년도 넘은 사진들이 나온다. 어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군 시절의 사진들… 미군 고문관을 초대해 호랑이 족자를 선물로 주는 사진, 아버지가 미국 출장 와서 미군들과 찍었던 사진, 아직 아기인 누이와 함께 찍은 결혼 4주년 기념사진도 나온다. 해수욕장에서 찍은 수영복 차림의 아버지 모습은 여느 영화배우 못지않다.
낡은 흑백에서 빛바랜 컬러 사진으로 넘어오는 동안 사진 속의 주인공들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살아온 세월만큼 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이 사진 속의 주인공들도 한때는 사랑, 미움, 아픔, 좌절, 욕망과 애증 따위로 힘겨워했으리라. 우리가 애써 붙잡고 살아가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이 잠시 부질없이 느껴진다. 결국 세월은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린다.
지나간 세월이 모두 아름답고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진 속의 사람들은 늘 웃고 있다.
과연 이 사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번은 보여주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사진 속의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