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장애인 전용

고영 양계장

by 고동운 Don Ko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은 식욕과 배설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젖을 먹는 순간, 아기는 입안 가득한 고소함과 속이 채워지는 포만감을 느낄 것이다. 다음으로는 배설의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식욕과 배설의 쾌감은 인간을 부끄럽고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좌변기가 매우 귀하던 시절이다. 별채로 있던 변소가 집 안으로 들어오며 소개된 수세식 변기는 아직도 쭈그리고 앉아 변을 본 후 물을 내리는 식이었다. 후에 아버지가 지은 우리 집의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내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문은 작았고 턱이 있었다.


나는 늘 요강에 용변을 보아야 했다. 외가에 사는 동안에는 늘 할머니가 곁에 있어 내가 변을 보고 나면 즉시 요강을 비웠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움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집으로 가니 상황이 좀 달라졌다. 어머니는 땅장사, 양계장, 갈빗집 일 등으로 늘 바쁘게 다녔기 때문에 요강을 제때에 비워주지 못했다. 가정부가 치우는 날이 늘어 갔다. 여름날 오래 비우지 않은 요강에서는 심한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속에 탈이 나서 설사라도 하게 되면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많이 먹지 않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일찍이 터득해 버렸다. 그 습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어도 과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미국에 오고 나서 가장 좋았던 일 중의 하나가 가고 싶은 때 화장실에 가고 샤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는 더운물을 채운 고무다라이에 들어가 앉아 목욕을 했었다. 얼굴에 수염이 나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장 근처의 여관으로 갔다. 목욕탕이 딸린 여관방을 얻어 남자 셋이서 목욕을 하고 나왔다.


미국 온 지 17년 만에 한국에 나갔을 때, “S 재활원” 의 기숙사에 묵었다. 그곳의 나이 든 간호사 선생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기숙사 학생들 중에는 방학을 해도 집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 머물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집에 가면 화장실 사용과 목욕 등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때는 IMF 이전이었기 때문에 아직 경기가 좋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살기에는 아직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식당에 가면 여전히 업혀서 들어가고 나와야 했으며, 화장실이 좁아 들어갈 수 없어 맥주병을 빌려 구석에 숨어 오줌을 누기도 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개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커다란 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천상의 음악을 들으며 맛난 음식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면, 미국은 절대로 “장애인의 천국” 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자신의 능력껏 사는 곳이 천국이라면, 미국은 장애인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장애인용이 따로 없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가 없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 함께 쓰며 산다. 서울의 롯데백화점에서의 일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설 때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몰려들어가는 바람에 몇 번이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잠시 후 어떤 사람이 장애인용은 따로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한적한 곳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장애인 전용이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장애인 차별이다. 장애인들은 그것을 쓰고 우리 것은 넘보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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