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반상회와 선교사

by 고동운 Don Ko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70년대 한국에는 반상회라는 것이 있었다. 반공 독재국가에서 국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수단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지사항 등을 전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간첩이나 범죄자들을 색출하자는 의도가 더 컸지 싶다. 매달 반상회에는 각 가정의 대표가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이 반상회에 늘 동생을 보내곤 했다. 미국 이민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동생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군입대를 연기할 목적으로 전문대를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반상회에 다녀오던 동생이 몰몬교회 선교사들을 만났는데, 마침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던 때라 원어민 선교사들이 말을 걸어오자 쉽게 약속을 하고 왔다. 며칠 후, 파란 눈의 선교사 두 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다. 몰몬교 선교사들은 대개 대학 1-2년 때 휴학을 하고 2년 동안 선교사업을 나간다. 선교 개척이 필요한 지역에 유능한 인재들을 주로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무렵 한국에 나온 선교사들 중에는 어른스럽고 재능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 후 선교사들과는 내가 더 친해졌다. 그중 한 명의 이름이 ‘나운도’ (Lund)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그들은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가 영어로 말을 해도 서툰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선교사와 계속 만나기 위해서는 복음을 공부해야 했고, 동생과 나는 결국에는 침례까지 받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먼저 미국으로 간 삼촌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몰몬교회에 다녔었다고 한다. 이 무렵에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몰몬교회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다. 선교사와 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온 여성들도 괘 많이 있었다.


처음에는 집 근처 고양리에 있는 작은 교회에, 벽제갈비를 팔고 역촌동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녹번 지부에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 나가며 처음으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청년부 교우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포커를 치기도 하고, 탁구장을 드나들며 탁구를 치기도 했다. 탁구장은 모두 빌딩의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탁구장에 갈 때는 한 사람이 나를 업고 다른 사람은 휠체어를 접어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녹번 지부에는 ‘이남선’ 형제가 있었는데, 교회 번역실의 부장이었다. 이 번역실에서는 각종 교재와 다양한 교회 서적, 소책자 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제작하고 있었다. 이남선 부장도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미국 이민을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더 친해졌다. 그분의 도움으로 번역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을 받아다가 집에서 했는데, 일감이 많지 않았다. 번역실에 나가서 일을 하면 일감을 더 줄 수 있다고 했지만, 차 편이 문제였다. 마침 같은 사무실의 ‘전종철’ 부장이 차가 있는데, 기름값 정도만 주면 차 편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장이 주선한 일이다. 두 사람이 나를 번갈아가며 업어서 차에 태워 함께 출퇴근을 했다.


그 후 한동안 번역실로 출퇴근을 하며 영문교회 책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그 후 이 부장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얼마 후에는 전 부장도 차를 처분하는 바람에 번역실로 출퇴근하는 일은 못하게 되었지만 번역일은 띄엄띄엄 81년 봄 미국에 올 때까지 계속했다.


그때 나를 도와주었던 이 부장과 전 부장에게는 지금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 부장이 떠나고 후임으로 들어온 이는 김 부장인데, 그는 바둑을 매우 좋아했다. 나와는 기력이 비슷해 같이 점심시간에 함께 바둑을 두곤 했다. 어떤 때는 두던 바둑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끝나지 않아 남들은 일을 하고 있는데 둘이 뚜걱뚜걱 바둑을 두기도 했다. 다 이긴 바둑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지고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찬물로 식히고 돌아오곤 했었다. 김 부장은 그 후 연차대회 참석차 미국에 몇 번 다녀갔는데, 올 때마다 만나 바둑을 두었다.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하니 번역실 식구들이 송별회를 해 주었는데, 스테이크 고기를 구워서 잘라주는 집이었다. 80년대 초는 아직도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다. 몇 점 안 되는 고기는 금방 동이 났고, 마늘만 실컷 구워 먹었다. 미국에 와서 LA 갈비를 푸짐히 구워 먹을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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