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학기
학교가 개강을 했다. 이번 학기에는 아크릴화 I을 듣는다.
개강을 앞둔 목요일, 2월 1일에 온라인으로 확인을 하니 교수가 준비물 리스트를 올려놓았다. 부랴부랴 아내가 쓰던 물건으로 준비물을 챙기고 없는 것은 아마존에 주문해서 장만했다.
개강 전 주말에 남가주에는 큰 비폭풍이 몰려와 4일 동안 비가 내렸다. 학교에 가는 화요일에도 비가 내렸다. 비 때문에 차가 늦게 와 수업에 늦었다.
담당 교수는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자기소개에 아내와 반려견과 함께 산다고 밝혀 놓은 것을 보니 동성애자다. 간단한 첫 강의가 끝나고, 자기소개를 하는 순서가 되었다. 이름과 함께 “he/she” 중 어느 것으로 불리기를 원하는지 말하라고 한다. 보이는 성별이 아닌 원하는 성별을 밝히라는 의미다. 요즘 미국에서는 원서나 신청서를 작성할 때도 이를 묻곤 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외모대로 자신의 성별을 밝혔다. 나는 이름만 밝히고 he/she 선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교수도 다시 묻지 않았다.
첫날이라 예상대로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났다. 아내의 주차장 패스와 도자기 반에서 쓸 진흙을 사러 갔다. 아내의 도자기 클래스는 토요일이라 비즈니스 오피스와 책가게가 문을 열지 않는다.
비는 내리고 날은 춥고 아직 점심을 못 먹어 배도 고팠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비즈니스 오피스에서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후 주차 패스를 사고, 책가게에서 진흙을 사며 시계를 보니 1시 30분이 넘었다. 카페테리아는 이미 문을 닫았으니 커피 마시기는 글렀다. 혹시나 싶어 진흙 값을 계산하며 커피를 살만한 곳이 있는가 하고 물으니 바로 옆가게에서 판다고 한다.
과연 책가게 옆에는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파는 카페가 있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사서 아침에 아내가 챙겨준 햄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비 오는 날 마시는 커피의 맛이라니. 최근에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수업은 강의로 시작해서 실습으로 끝난다. 다음 주, 캔버스 종이를 이젤에 올려놓고 물감을 칠하는 실습을 했다. 한데 문제가 발생했다. 캔버스 종이에 바를 젯소가 없는 것이다. 나는 캔버스 종이에는 젯소를 바르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교수에게 이야기하니 학교에 있는 것을 덜어 주었다.
평생 처음 써보는 이젤이라 익숙지 않다. 휠체어로 접근을 하자니 각이 나오지 않아 멀치감치 떨어지게 된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준비해 간 물감의 뚜껑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가 쓰던 물감을 가지고 갔는데, 오래 쓰지 않아 물감이 뚜껑에 말라 붙어 아무리 애를 써도 열리지 않았다. 결국 곁에 있는 사람에게 번트 엄버를 빌려 그날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
수업은 화요일. 수요일 오전에는 줌으로 교수와 면담이 가능하다. 다음날 시간에 맞추어 줌에 들어가니 교수가 반갑게 맞는다. 첫날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니 그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자기가 보기에도 내가 이젤에서 너무 멀찍이 떨어져 그리더라며 다음 주에 오면 접근성에 대해 도움을 주겠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