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슛, 골인

by 고동운 Don Ko

큰 아들 ‘세일이’는 3살에 미국에 왔다. 미국에 와서 어린이 집에 보냈더니 며칠 후 울며 가지 않으려 했다. 영어를 못하니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겠나. 할아버지를 졸라 허락을 받아냈다. 가을에 내가 대학에 입학을 하며 학교에서 운영하는 탁아 시설에 보냈는데, 그곳에서 착한 형아를 만났다. 엄마와 살고 있는 초등학교 4-5학년쯤의 남자아이였는데, 어미 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듯 세일이를 잘 보살펴 주었다. 다음 해 내가 운전을 배워 차를 개조하기 위해 수리하는 곳에 가지고 갔더니 그 아이의 엄마가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나는 학교에 가서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일이에게 영어로 말을 했다. 매일 TV 앞에 앉아 만화영화를 보더니 영어가 늘어갔다. 유치원에 가서는 언어의 문제없이 잘 적응을 했다. 영어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한글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 지금도 한국말이 서툴다. 나의 근시안적 안목이 후회스럽다.


나는 세일이가 운동을 잘하기를 바랐다. 3살 때부터 탁구공과 테니스 공으로 야구를 가르쳤다. 미국에서는 리틀야구를 하기 전에 T-ball을 배운다.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고 ‘티’ 위에 야구공을 놓고 친다. 그다음 단계는 코치나 부모가 던져주는 공을 치는 것이고, 마지막에 투수가 던지는 공을 치게 된다. 나는 아이가 또래보다 앞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1-2살 나이가 많은 팀에 넣어 운동은 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의 욕심이었다. 어린아이에게 1-2살 차이는 정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세월이다.


밴나이스 공원에서 T-ball을 시작했는데, 세일이는 순발력이 좋아 수비를 잘했다. 리틀야구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이 된다. 각 팀에는 감독과 코치가 있고, ‘팀 맘’(team mom) 이 있다. ‘팀 맘’의 역할은 연습이나 시합 스케줄 등을 전달하는 것이다. 매 경기마다 부모들이 돌아가며 간식을 준비해 간다.


특정한 팀에 잘하는 아이들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로 등록하는 아이들은 미리 기량을 평가해서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을 나누어 팀을 만든다. 친한 사람들끼리 아이들을 모아 와서 팀을 등록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한 팀이 뛰어나게 잘했다. 아이들은 거의 백인이었고, 가방과 재킷 등을 통일해서 맞추어 입은 폼이 미리 만들어서 온 팀이었다. 어느 팀도 그 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눈치만 보며 감히 불평을 하는 이들이 없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서서 공원에 항의를 하고 시에 편지도 썼다. 다음 시즌에 그 팀은 보이지 않았다.


세일이는 야구를 잘 이해하고 수비는 잘했지만 체구가 작아 장타를 치지 못했다. 랭캐스터로 이사를 가서 축구를 시켰는데, 발이 빠르다 보니 골을 많이 넣었다. 그 지역에 축구학교를 시작하는 영국인 코치의 눈에 들었다. 사립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된다고 하자, 학비를 면제하고 세일이를 입학시켜 주었다. 그가 시도했던 축구학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해 한 학기만에 문을 닫았고, 우리는 다시 밸리로 이사를 나왔다.


그 후 세일이는 AYSO와 클럽, 고등학교 시절 내 축구를 했고, 대학도 축구를 하기 위해 사립대학인 '옥시덴탈' (Occidental College)로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잠시 워싱턴 주에 있는 축구학교에서 코치를 하기도 했다.


세일가 공을 몰고 운동장을 질주해서 멋진 골을 넣을 때, 난 마치 내가 골을 넣은 듯 환호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은 해내는 나의 분신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늘 연습과 시합에 데리고 다녔고, 주말이면 토너먼트를 위해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AYSO 시절에는 시합 중 부상으로 손목을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손으로 다친 팔을 붙잡고 뛰면서도 골을 넣었다. 경기가 끝나고 병원에 가니 손목에 가는 선 골절을 입었다며 깁스를 해 주었다.


세일이와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다른 아이들의 뒷바라지는 소홀했다. 세일이의 연습이나 시합과 겹치면 둘째와 셋째는 연습이나 시합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몇 블록을 걸어서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아이에게 너무 많은 편애를 한 셈이다. 내가 공을 들인 만큼 세일이는 나름 부담이 컷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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