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신도시

by 고동운 Don Ko

80년대 중반 ‘팜데일/랭캐스터’는 새로운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LA와 밸리 지역의 부동산 값이 상승하는데 반해 상대적으로 땅 값이 저렴하고 발전의 여지가 있어 새로운 주택단지가 많이 들어섰다. 팜데일과 랭캐스터 중간에 거대한 공군기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상업용 국제공항이 들어서고 고속전철이 들어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회사에서도 그 지역으로 집을 사서 이사 가는 직원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며 마당이 있는 집이 필요했다. LA 까지는 70마일, 차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다. 집을 사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주택단지에는 나와 비슷한, 30-40대에 아이들이 2-3 있는,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어려서 살았던 구파발을 연상시키는 환경이었다. 10살 나이의 아이들이 마당의 잔디를 깎고, 세차를 했다.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일이 서툰 세일이가 잔디 깎는 일을 소홀이 하면, 건넛집 아이가 몰래 와서 깎아 놓기도 했다.


옆집에는 공군 정비사 가족이 살았는데, 큰 딸 '모닉' 이 세일이와 같은 학년이었다. 낯선 곳에서 좋은 이웃을 만나 필요한 생활정보를 얻었다. 마켓까지 가려면 3마일 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음식을 하다 달걀이나 설탕이 부족하면 옆집에 가서 얻어 오기도 하고 빌려 주기도 했다. 세일이가 수두에 걸려 일주일 가량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모닉'이 매일 숙제를 배달해 주었다. 세일이의 수두가 나아갈 무렵에 그 아이가 수두에 걸려 쓰던 약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아들 셋을 둔 이웃집 남자가 아침 출근길에 기차 건널목에서 열차와 충돌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웃들이 돈을 모아 장례비에 보태 주었다. 핼러윈이 되면 아이들은 멀리 갈 필요 없이 단지를 도는 것으로 충분한 양의 캔디를 얻었다.


그곳에서 도시와 시골 학교의 차이도 경험했다. 세일이는 랭캐스터에 가자 학년에서 5등 안에 들기 시작했다. 랭캐스터에서 발행하는 지역 신문에는 매달 학년 별로 우등생들의 명단을 발표하는데, 세일이는 매달 이름을 올렸다. 밸리에서도 공부는 잘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랭캐스터는 사막성 기후라 낮과 밤 일교차가 심하며,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바람이 많이 불며 한적한 길에는 서부영화에서 볼 수 있는 둥근 ‘텀블 위드’라는 마른 잡초가 굴러 다닌다. 여름에는 소나기가 오고 겨울에는 눈이 오기도 한다.


겨울 아침에는 자동차 앞 유리에 성에가 끼어 더운물을 부어 녹여야 했다. 하얗게 눈이 내린 아침에 출근을 시도하다 차가 빙빙 돌아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도 문을 닫아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나와 쓰레기통 뚜껑으로 썰매를 타고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어야 했다. 기름 값이 큰 부담이 되었다.


랭캐스터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에드워드’ 공군기지가 있다. 시민권을 받아 연방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주 정부에서 보험 조정관으로 일한 경력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다시 말단 사무직에서 시작해야 할 형편이었다. 월급이 너무 적어 이직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때 연방 공무원에 되었더라면 내 인생은 또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근처에 공근 기지들과 기타 군사시설이 있어 은퇴한 군인들과 군인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 그곳에서 공군 상사로 근무하는 한인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 나이가 비슷해서 가끔 만나 밥을 먹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한국으로 나가 근무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얼마 후 한국으로 전근을 갔다. 주변에서 모두들 그를 부러워했다. 그는 한국에서 나이 어린 여자를 만나 아내와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실감 난다.


아침저녁 1시간 반씩, 하루 3시간을 통근시간으로 허비하던 나는 결국 집을 팔고 다시 밸리로 돌아왔다. 2년 동안 랭캐스터에서 살며 얻은 것은 빚과 낡아진 자동차 그리고 딸아이 ‘세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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