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동운 Don Ko May 21. 2024

나는 경비원입니다

책 이야기

한동안 책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소회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어느 때부턴가 마치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원고를 생각하고, 인용할 구절에 표시를 하고. 책 읽는 일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다. 그냥 전처럼 재미로 책을 읽고 싶었다.


‘패트릭 브링리’의 자전적 이야기인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아내가 교우에게서 선물 받은 책이다. 책이 읽고 싶다고 해서 집에 있는 책을 몇 권 빌려 주었더니, 몇 달 만에 돌려주며 선물로 주었다. 난 이 책을 열기 전까지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대학 졸업 후 시사 주간지 ‘더 뉴요커’에 다니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뉴욕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패트릭 브링리는 사랑하는 형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깊은 무기력감과 상실감에 빠진다. 그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시끄러운 세상을 버리고 아름답고 고요한 공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단순한 일에 몰두하기로 한다.


나 역시 31년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며 다음번 커리어는 단순한 일을 하고 싶었다. 남을 부리고 평가하는 관리직이 아닌, 복잡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할 필요가 없는, 주차장 입구에서 주차비를 받거나, 고속도로 입구에서 통행료를 받는 그런 일자리를 갖고 싶었다. 당연히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은 그가 10년 동안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살았던 시절을 담고 있다.


그는 경비원으로 머물지 않고, 미술관에 있는 다양한 예술작품과 그것들을 그리고 만든 사람들에 대해 공부한 것을 잘 설명해 내고 있다. 뉴욕에 가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읽으면 훨씬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거의 끝낼 무렵 책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다. (302 페이지)


퀼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천조각을 이어 붙여 만드는 퀼트는 누더기 이불에서 시작되었다. 추위를 막기 위해, 딱딱한 침상에 깔기 위해 낡은 옷이나 천 조각을 모아 이어 붙여 만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니와 디자인이 생겨난 것이다.


10년을 끝으로 그는 이직을 결심하고 맨해튼의 도보 여행 가이드가 되었다.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 (320 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