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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un 17. 202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 이야기

하루키가 언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는가는 익히 알려진 일이다. 1978년 4월, 어느 쾌청한 날 오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의 센트럴리그 개막전 때의 일이다. 1회 말 미국인 선수 힐턴이 좌중간으로 날아가는 2루타를 친 순간, 그는 뜬금없이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했고, 시합이 끝나자 전차를 타고 신주쿠의 서점에 가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다. 그리고 그는 밤늦게 가게 일을 끝내고 주방 식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거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그 후 그가 어떻게 소설가로 성장을 했으며, 왜 오랜 시간 일본을 떠나 작품 활동을 했고, 미국에는 어떻게 진출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데뷰작이 된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 쓰고 읽어보니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기성관념을 버리고 느낀 것,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영어로 다시 썼다고 한다. 나도 영어로 글을 쓰곤 하지만, 외국어를 배워 영작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정된 단어를 구사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문장은 짧고, 복잡한 내용을 담을 수 없다. 불필요한 묘사는 버리고 심플한 문장을 쓰게 된다. 그렇게 영어로 다시 쓴 소설을 이번에는 일본어로 번역을 했다. 그리고 다듬어서 ‘군조’에 보낸 원고로 신인상을 타게 되었다.


일본 문학계에서는 새로운 소재, 새로운 문장으로 등장한 그를 삐딱한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고, 그는 좀 더 자유롭게 소설을 쓰고 싶어 외국으로 나왔다고 한다.


흔히 예술가는 영감이 오면 잠도 먹는 것도 잊고 창작에 열중하고, 아이디어가 없으면 몇 달이고 ‘멍’ 때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하루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쓴다고 한다. 정해진 분량을 쓰고 나면, 아직 머리에 생각이 남아 있어도 중단한다.


다 쓴 원고는 먼저 아내에게 읽게 해 의견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수정을 하고, 고친 부분을 보여주고 다시 수정을 한다. 이런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한 후에야 원고를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내고, 그때부터 또 몇 차례 수정하는 일이 반복된다. 하루키는 이렇게 원고를 다시 읽고 고치는 일을 매우 즐긴다고 한다.


내가 배울 점이다. 나는 원고를 써서 한, 두 번 검토해서 수정을 한 후 바로 신문사에 보내거나 블로그에 올린다. 신문에 실린 내 글을 읽어보면 눈에 거슬리는 곳이 그제사 보인다. 블로그에 올린 글은 다시 수정이 가능하지만, 신문에 실린 글을 다시 고칠 수가 없다. 하루나 이틀 후에 다시 읽어보고 고쳤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지만, 다음 차례가 오면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글쟁이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는 ‘아쿠타가와’상에 두 번 후보로 오른 적은 있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렇다 할 문학상을 수상한 적도 없다. 그는 결코 문학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출판사들이 앞을 다투어 문학상을 만들었는데, 다분히 상업적인 목적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작가는 몇몇 사람의 의견으로 주어지는 상보다는 독자들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그는 ‘수치 중시’와 ‘기계적인 암기’ 위주의 일본 교육도 꼬집고 있다. 이 장을 읽으며 개성과 상상력이 없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과연 한국 교육제도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그의 미국 문단 진출은 스스로 발로 뛰며 자신의 책을 알리고, 대형출판사를 통해 번역/출판하며 이루어졌다. 미국에도 이제 하루키의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며 하루키는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는 대단한 작가지만, 그 이전에 존경할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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