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나는 왜 글을 쓰는가

by 고동운 Don Ko

중, 고등학생 나이 때에는 가끔 학생잡지에 시를 투고해서 실리기도 했었다. ‘키스파’를 좋아했던 단발머리 소녀는 내게 시인이 되라고 했다.


좋은 한글 이름도 많이 있는데 왜 굳이 과자 이름을 영어로 짓는가 라는 취지의 글을 ‘동아일보’ 독자란에 투고해서 실린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며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다.


겨울이 되면 신춘문예에 원고를 보내곤 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영문판 교회 잡지에 실린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에게 모티브를 얻어 동화로 만들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를 해서 예심을 통과했던 적이 한번 있기는 하다. 창작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모방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당선이 안 된 것이 다행이었지 싶다.


미국에 와서 보니 한인신문에 독자 투고란들이 있었다. 글을 써서 보냈더니 잘 실어 주었다. 나성 신문에서 모집한 문예전에 입상을 하고, 뉴욕 중앙일보 문예공모전에 시가 당선되기도 했다.


그 무렵 이민 온 몇몇 문인들을 중심으로 미주에서도 문학활동이 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문학모임에도 나가 보았다. 한국에서 잠시 문단활동을 하다 미국에 온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한국의 삼류 문예지에 등단을 시켜주고 ‘아무개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용돈을 받아 쓰는 형국이었다. 더러 책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 자비 출판이었다. 그런 모임에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LA 중앙일보에 근무하던 ‘김호길’ (시조시인)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닥치는 대로 시, 콩트, 시론, 수필 따위를 써서 보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한 가지 장르를 선택해서 꾸준히 쓰라고 권유해 주었다. 내가 쓰는 글 중에는 산문이 가장 좋다는 말도 덧 붙였다.


그 후로 나는 줄곧 산문만을 쓰고 있다. 10여 년쯤 투고를 했더니, 하루는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미주 중앙일보의 인기 칼럼 ‘이 아침에…’ 필자를 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20여 년째 중앙일보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한 달에 $100 씩 원고료를 받기도 했는데, 그 후 재정난으로 이제 원고료는 없다.


문학에 대한 꿈은 진즉에 접었다. 나는 스스로를 잡문 쓰는 사람, 또는 칼럼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자유스럽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게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라고 말할 것이다. 친구도, 마땅한 소일거리도 없던 내게 글은 세상을 향한 나의 숨구멍이었다. 나는 글을 통하여 내 생각과 말을 토해내며 삶의 활력을 얻었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실수와 지나온 삶을 반성한다.


처음에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글을 썼고, 그다음에는 활자가 되어 나오는 내 글을 읽는 재미로 썼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훨씬 적은 양의 글을 쓴다. 글을 쓰며 늘 생각하게 된다. 과연 이 글이 독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누군가 이 글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은 없는지. 말보다 무서운 것이 글이다. 세월이 지나면 잊히기도 하는 말과 달리 활자가 된 글은 영원히 남는다.


가끔 밖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 글을 읽었다는 독자들이다. 물론 내 글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니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다. 내 글에 상처 받았거나 기분이 상했던 사람이라면 나를 보고 고개를 돌려 외면했을 것이다. 부디 후자의 수가 적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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