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집 없는 설움

by 고동운 Don Ko

미국의 장애인들 이야기와 내가 살며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한국의 장애인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장애인도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려서부터 어울리는 조기통합교육과 누구나 접근과 이용이 가능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애썼다.


방귀희 교수는 계간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을 만들고 있었다. (2015년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내게 미국의 장애인 문인을 소개하는 글을 부탁했다. 1년 동안 4번의 연재를 마치고 나서 그녀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장애인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책을 내자고 했다. 솟대문학에서는 장애인 문인들의 책을 출판해 주고 있었는데, 그 자격을 얻으려면 솟대문학을 통해 등단을 했던가, 글을 연재했던 경력이 있어야 했다. 내 책을 만들어주기 위해 굳이 필요치 않은 연재를 부탁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책인 칼럼집 ‘지금, 뭐하슈?’가 출간되었다.


딸아이 세미가 한 살 때 이사 온 집에서 13년을 살았다. 부동산 가격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집주인은 내게 집을 사던지 아니면 이사를 나가 달라고 했다. 퇴직금에서 돈을 빌리고, 그동안 모은 얼마간의 돈을 보태어 집을 장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집 값의 3-5%만 가지고 있으면 남어지는 은행의 융자를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다. $250,000 가격대의 집을 살 수 있는 융자 허가를 받았다.


수입보다 많은 지출로 크레딧이 망가져 고생을 한 뒤라 내 형편에 맞는 집을 사고 싶었다. 살고 있던 집의 주인은 내 예산보다 다소 높은 가격을 달라고 했고, 집을 수리하려면 2만 달러 정도가 필요했는데, 내게는 그런 돈이 없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에게서 매물 리스트를 받아 퇴근 후와 주말에 차를 타고 둘러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집을 몇 개 골라 부동산업자와 함께 가서 내부를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입구와 화장실이 휠체어로 접근이 가능한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내가 살던 밸리 지역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베이비 붐이 시작된 후인 50년대 말에 세워진 도시다. 50년 이상 된 집들이라 입구에는 계단이 있고 방문이 좁은 집들이 많았다.


경제는 정확한 계산보다는 감정의 산물이다. 증권이나 부동산이 그러하다. 객관적 근거도 없이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가격이 내려갈 때, 사람들은 더 내리기 전에 빨리 팔아버리려고 하고, 가격이 오를 때는 더 오르기 전에 사려고 몰려든다.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뛰고 있었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 달라는 가격보다 더 주고 사는 추세였다. 몇 군데 오퍼를 넣었는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두 달에 걸쳐 20-30채의 집을 본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가격대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을 가진 집을 사게 되었다. 입구에는 3개의 계단이 있었으나 12피트짜리 간이 램프를 놓았다.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는 1:12의 비율이라야 한다. 1인치 높이에는 12인치의 경사로가 필요하다. 간이 램프는 가장 긴 것이 12피트였다. 비율이 1:10 도 되지 않았다. 혼자서 오르내리기에는 버거운 경사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입구의 경사로는 후에 아내가 손을 보아 완만하게 만들어 쓰다가 지금은 제대로 모양을 갖춘 램프를 만들어 놓았다.


낡은 집이라 여기저기 손 볼 것도 많았지만 매년 계약기간이 되면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은 편하다. 아내가 들어와 살며 조금씩 손을 보아 이제는 제법 살만한 집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세월이 지나니 집값도 올랐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조금 더 큰 집을 샀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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