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에서

신 신부님

일상에서...

by 고동운 Don Ko

주일아침, 13년 만에 신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했다. 신부님과의 인연은 15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유아세례를 받았던 아내는 성인이 된 후 오랫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 5년쯤 지난 무렵, 외로운 타국생활에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거래하는 한국은행의 여직원이 몇 번인가 우리에게 성당에 나오라고 권했다.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벼르다가, 어느 주일에 아내와 함께 성정하상 성당을 찾았다. 그 성당의 주임신부가 신 신부님이었다.


미사 시작 전, 우리가 새로운 방문자라는 것을 알아본 신부님이 미사 끝나고 잠시 보고 가라고 했다. 눈을 맞추고 다정한 말을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건네는 신부님이 단박에 좋아져 성당에 나가게 되었고,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


아직 세례 받기 전, 성당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말을 맞아 구역 반장인 카타리나 자매 집에서 구역식구들이 모여 가정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성체를 모시는 시간, 성체를 나누어 주던 신부님이 내 앞에 오더니 성체 대신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해 주었다. 순간, “동운아, 그동안 네가 힘들게 산 것을 내가 다 안다. 이제 내게서 평안을 누려라.”라는 생생한 말소리가 내 머리/마음에 들어왔다. 음성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메시지였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 받았던 그 감동이 아직도 나를 교회에 잡아두고 있다. 세례 받고 15년이 지났지만, 내 신앙은 더 커지지 않았다. 아픈 때를 빼고는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았고, 때가 되면 고해성사를 하고, 4 복음서를 읽었지만, 성경이나 교리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성령대회나 피정을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느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며 그분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니는 성당은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신자 수가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공동체다. 신 신부님이 임기를 끝내고 돌아가신 후, 4명의 신부님이 다녀 갔고, 지금은 장 신부님이 주임신부다. 신부도 사람인지라 성격도 다르고 인품도 다르다. 신부님은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일 뿐, 신앙이란 결국 나와 하느님의 관계다. 모르긴 해도 미사에 참여하는 80여 명 신자들의 마음에는 80여 개 다른 하느님이 계실 것이다. 모습도 다르고, 말씀도 다를 것이다. 교리와는 맞지 않겠지만,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전능하시니 우리 각자에게 맞추어 주시는 것이리라.


주일 강론을 하며 신 신부님은 13년 전 헤어진 교우 중에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고, 얼굴은 기억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교우들도 있다며,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가장 아쉬운 것은 알고 지내던 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일이다.


그래요, 신부님, 가끔 얼굴 보고 살아요. 다음에는 내가 찾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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