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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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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an 24. 2018

지나간 오늘, 오지 않을 오늘

이 아침에...

2007년 1월의 어느 추운 아침에 워싱턴 디시의 전철역 앞에서 한 남자가 바흐의 곡을 45분 동안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였다. 그가 연주를 하는 동안 2천여 명의 사람이 그의 곁을 지나갔으나 그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고 3분이 지나자 한 중년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다가 곧 가 버렸다. 4분 후, 한 여인이 남자 앞에 놓인 모자에 1달러 지폐를 한 장 던져주고 지나갔다. 6분 후, 젊은 남자가 잠시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음악을 듣다가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걸어가 버렸다. 10분 후, 3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남자 앞에 멈추어 서자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갔다. 아이는 연주자를 보기 위해 다시 멈추었으나 엄마가 좀 더 세게 그를 잡아끌며 데리고 갔다. 아이는 끌려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다보았다. 그 후에도 서너 명의 아이들이 그를 보기 위해 가던 걸음을 멈추었으나 번번이 부모로 보이는 어른에게 끌려갔다.


45분 동안 그는 쉼 없이 계속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동안 단지 여섯 사람만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그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갔으며 20명가량의 사람이 지나가며 돈을 떨구어 주었다. 그의 모자에는 32달러의 돈이 모였다.

 

1시간 후, 그는 바이올린을 가방에 넣고 자리를 떴다. 아무도 그가 자리를 뜬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으며 박수소리도 없었다.

 

그가 유명한 연주자인 ‘조슈아 벨’ 이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사용한 악기는 3백50만 달러짜리 바이올린이었으며 그는 아주 연주하기 힘든 곡들을 골라 연주했었다.

 

이틀 후, 그는 보스턴의 공연장에서 연주를 했는데 표는 일치감치 매진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똑같은 곡을 듣기 위하여 평균 100달러를 내고 들어왔다.


‘자슈아 벨’의 워싱턴 디시 전철역 공연은 사람들의 편견과 우선순위에 대한 실험으로 워싱턴 포스트가 마련했던 것이다.

 

그토록 유명한 연주자가 훌륭한 악기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면 얼마나 많은 다른 귀한 것들을 일상에서 놓치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는 일 중의 하나는 일상의 작은 일에서 찾는 즐거움이다. 


아내가 지어준 하얀 쌀밥에 잘 구워진 조기를 한점 올려 먹는 그 맛은 어떤 유명한 식당의 진수성찬보다도 맛있다. 나와 아내는 가끔 저녁을 먹고 어두워지면 차를 타고 집 근처의 스타벅스를 찾는다. 주자창 한쪽 나무 아래 차를 세워 놓고 CD를 들으며 커피 한잔을 나누어 마시는 시간을 좋아한다.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이 있다. 때로는 머리 위로 달이 떠오르기도 하고 요즘은 열어놓은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정겹고 시원하다. 


난 안개비가 내리는 밤거리를 차를 타고 천천히 달리는 것도 좋아한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는 한적한 거리면 더욱 좋다. 잠시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다. 


미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80년대 초, 이민 선배들은 내게 ‘그런 건 먼저 자리를 잡고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해 주었다. 사업체를 마련하고 집도 사서 먼저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30여 년을 살았지만 난 지금도 자주 돈 걱정을 하며 산다. 아마 아직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따지면 언제 자리를 잡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한순간 한 공간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삶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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