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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Feb 13. 2020

꽃피는 봄이 오면

일상에서...

그놈들이 처음 나타난 것은 아마도 6-7년 전의 일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미국 집들은 뒷담장을 공유하며 앞은 각기 반대쪽을 향하고 있다. 담장이라고 해야 나무판자가 대부분이다. 뒷집에 풀장이 있어, 파티라도 하면 첨벙이는 물소리, 웃음소리가 그대로 담을 넘어온다.


우리 집 뒤에는 집이 없다. 뒷집 대신 작은 동산이 있다. 동산에는 야생풀과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 해부턴가 봄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한철이 지나고 떨어진 꽃씨는 메마르고 뜨거운 여름을 견딘 후, 겨울에 내리는 비에 싹을 틔우고 꽃이 피었다. 처음에는 한 귀퉁이에 조금 피더니 매해 조금씩 영토를 넓혀나가 이제는 거의 꽃동산이다. 작년부터는 옆집으로도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작년에 피었던 꽃들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우리 집 뒤에만 꽃 핀 것이 보인다. 사전에 찾아보니 금잔화 (Pot marigold)였다.


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그곳에 자리한 것인지, 잠시 전깃줄에 앉아 쉬고 가던 새들이 떨구고 간 새똥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윗동네 사람이 버린 씨앗이 퍼진 것인지 알 길은 없다. 겨울에 비가 좀 넉넉히 내린 해에는 더욱 탐스럽게 핀다. 금년 겨울은 날이 가문 탓에 꽃의 씨알이 작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뒷동산은 꽃동산이다. 결과 없는 행동은 없고, 원인 없는 행동도 없다. 아무 뜻 없이 한 일에도 인과응보는 돌아온다. 공무원 시절, 시험과 채용 인터뷰에 자주 참여했었다. 15-30분 남짓한 시간에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짧은 만남 후에, 나는 그들에게 시험 점수를 주었고, 채용과 낙방의 소식을 알려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희망을, 누군가에게는 좌절과 실망을 주었다. 


남가주 (Southern California)에는 겨울에만 비가 내린다. 비가 오고 나면 산과 들판에는 온갖 들풀이 파랗게 돋아난다. 제법 사람 허벅지 높이까지 자라는 풀들도 있다. 풀들과 함께 야생화들이 꽃을 피운다. 비가 자주 온 해에는 들판 가득 꽃들이 핀다. 멀리서 보면 마치 파스텔로 칠을 해 놓은 것 같다. 봄이면 꽃구경에 주변 도로가 마비상태에 이른다. 


여름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 파랗던 풀들이 바짝 말라 누렇게 변하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산불로 번진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발생하는 산불은 캘리포니아 주의 연례행사다.


뒷동산에 꽃이 만발하면 아내는 꽃놀이 잔치를 벌인다. 뒷마당 페티오에 동생들이나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신다. 따로 꽃구경 갈 필요도 없다. 


                                                   (놈들이 지난주부터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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