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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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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Feb 12. 2018

맨 처음 고백

이 아침에...

내가 처음 밸런타인데이에 대하여 안 것은 중학생 나이 때쯤의 일이 아닌가 싶다. 학생 잡지인 ‘학원’에 실린 기사를 읽고 나서의 일이다.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날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서양에는 그런 날도 있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막상 미국에 와 보니 내가 알고 있던 밸런타인데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이날은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을 하는 날로 지내고 있었다. 미국에서 꽃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은 아마 밸런타인데이와 어머니 날일 것이다. 이때는 꽃값이 거의 두배로 뛴다.


내가 일하던 직장에는 100여 명가량의 직원이 있었고, 그중 과반수가 여성이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하루 종일 꽃배달로 안내 데스크가 붐볐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커다란 꽃이나 풍선, 인형 따위를 받아 든 직원은 보란 듯이 느린 걸음으로 사무실을 가로질러 휴게실에 가서 꽃에 물을 주거나 선물의 포장을 푼 후, 다시 느린 걸음으로 책상으로 가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사람들은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집이나 또는 일과 후 식당에서 받기보다 사무실로 배달되는 것을 선호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밸런타인데이는 연인들만의 날이 아니다. 친구나 가족, 이웃과도 사랑을 나누는 날이다. 이날은 마주치는 사람들과 “즐거운 밸런타인데이가 되세요”라고 인사를 나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사탕을 주고받는데, 한 상자에 30개 (미국의 초등학교는 한 반이 30명을 넘지 않는다) 정도의 카드와 사탕 그리고 선생님에게 드릴 카드까지 든 패키지도 있다. 


한국의 경제를 IMF 전후로 나눌 수 있듯이 미국의 경제는 부동산발 경기후퇴로 (recession) 나눌 수 있다. 그 후 미국인들의 소비 패턴도 많이 달라진 듯싶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꽃배달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젊은이들 중에는 이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회사에 꽤 잘생긴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어느 해 밸런타인데이에 그 앞으로 피자가 배달되었다. 밸런타인데이에 꽃 대신 피자? 알고 보니 그의 여자 친구가 보낸 피자였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20여 명의 직원이 모두 나누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피자였다. 잘 생긴 그에게 혹시라도 추파를 던지는 여인이 있다면 미리 봉쇄하기 위하여 “여기 임자가 있습니다”라는 메시지 삼아 보낸 피자가 아니었나 싶다.

 

셋째 아들 세환이는 형 친구의 부탁을 받아 밸런타인데이에 꽃 배달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여자 친구에게 깜짝 이벤트를 해 주기 위해 ‘UPS’(미국의 소포 배달회사) 유니폼을 빌려 꽃 배달부에게 입히고 준비한 꽃과 선물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식당들은 다음 주 밸런타인데이에 맞추어 꽃과 와인은 물론 목걸이 선물까지 곁들인 연인들을 위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 밸런타인데이는 외식과 소비를 부추기는 날이 되어 버렸다.


아직 사랑을 고백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을 위해 맨 처음 고백의 날로 이날을 남겨놓고 싶은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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