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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맛의 기억

꿩만두

맛의 기억

by 고동운 Don Ko

요즘에는 냉동식품 가공 기술이 발달하여 다양한 종류의 만두를 사시사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주로 겨울에 먹는 별미에 속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의 만두는 꿩만두다. 아버지가 군에 계시던 때, 겨울이면 사냥을 가서 꿩을 잡아오곤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따듯한 민박집에서 친구들과 마작을 하고 있었고 부하들이 눈밭을 헤매며 잡아온 꿩이었을 수도 있다.


잡아온 꿩은 외할머니가 나서서 대가리를 떼에 내고 털과 내장을 제거한 다음 잔뼈는 빼지 않고 살과 함께 칼로 다진다. 이렇게 곱게 다진 꿩고기에 두부와 숙주, 파, 마늘 등을 넣어 속을 만들고 밀가루 반죽을 작게 떼어 다듬이 방망이로 밀어 만든 만두피로 싸서 만두를 만들었다. 다듬이 방망이로 적당한 크기의 만두피 만들기가 서툰 사람은 먼저 크게 밀어 주전자 뚜껑으로 잘라 정확한 규격의 만두피를 만들기도 한다.


만두를 좋아하는 내게 이런 꿩만두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어 주었다. 만두는 맛있지만 만두소에서 씹히는 잘게 다진 뼈는 정말 싫었다. 고통과 기쁨은 늘 함께 한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달은 셈이다.


꿩만두에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내 나이 6-7세 때의 일이 아닌가 싶다. 동생과 내가 함께 만두를 먹고 있었다. 나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아껴서 먹는 편이고, 동생은 얼른 먹고 그릇을 내미는 편이다. 동생은 이미 자기 몫의 만두를 다 먹고 내가 먹는 것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마지막 하나 남은 만두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숟가락으로 낙아채어 제 입으로 가지고 갔다.


나는 만두를 빼앗겼다고 울고, 동생은 내게 맞고 울고… 상황을 파악한 어른들은 웃음보가 터지고… 그날 우리는 만두를 몇 개씩 더 얻어먹었던 것 같다.


꿩의 날개는 말려서 김에 참기름을 바를 때 사용했고, 대가리는 나와 동생의 장난감이 되었다.


아버지가 꿩 사냥을 그만둔 후 만두소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갔다. 이모는 만두를 빚다가 익히지 않은 만두소를 집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이모를 나무라고는 했지만 이모는 할머니가 한눈을 파는 사이 냉큼 먹고는 했다. 나도 한두 번 얻어먹은 기억이 있는데, 날부두의 고소함과 숙주의 아삭함이 있어 먹을만했다.


본가가 서울인 외가에서는 김치만두는 먹지 않았다. 난 어른이 되고 난 후에야 김치만두를 맛볼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김치 만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향이 경상도인 아내는 만두와 함께 양념장을 내놓는데, 어려서 우리 집에서는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


날씨가 추워졌다. 따끈한 만둣국 먹기 딱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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