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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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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Feb 24. 2018

술이 술을 부르고

이 아침에...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능력이 떨어져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온다. 내 주량은 맥주 반 컵, 소주 반 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술 좋아하고 잘 마시는 이들이 많아 가끔 술자리에 가게 된다. 말로만 듣던 한인들의 음주문화를 접한 것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5-6년 전부터의 일이다.


술을 각자의 주량대로 적당히 마시고 덕담을 나누며 평소에 꺼내기 어려운 말들도 나누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도 되고 정도 깊어가는 것 같다. 문제는 적당히 마시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모임에 갔을 때 상에 놓인 술병의 종류와 참석인원 대비 술병의 수를 보면 대개 오늘 술판이 어떻게 전개되리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와인과 맥주만 등장한 날은 간단히 목만 축이는 날이다. 고기 안주가 좋은 날은 소주도 등장하는데 이 역시 한두 잔만 나누면 기분 좋은 식사가 될 수 있다.

 

처음부터 소맥이 돌고 소주잔으로 원샷을 외치는 날은 쉽게 끝나는 술판이 아니다. 게다가 주인이 기분 좋다고 평소 아끼던 양주병을 꺼내오면 한두 사람은 필름이 끊기는 날이다.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을 나는 이런 자리에서 가끔 목격한다. 이제 한잔이 더 들어가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곁에서는 술을 더 권하고 사람들을 그걸 받아 마신다. 일단 혀가 꼬부라진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것이 좋고 들었다 해도 안 들은 것으로 해 두어야 한다. 할 말 못 할 말을 다 내뱉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그런 적이 없다고 시침을 떼면 그만이다. 인정을 하더라도 술김에 한말로 넘겨 버리면 그만이다. 


내가 30여 년 동안 일하며 함께했던 미국인들의 술자리는 이와는 사뭇 달랐다. 술병을 앞에 두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마시지 않는다. 술은 따로 한 곳에 모아 두고 누군가 바텐더 노릇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 알아서 가져다 마신다. 맥주와 와인, 다양한 양주가 등장하고 소다나 주스 등도 마련되어 있다. 


양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는 없고,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이들도 없다. 양주는 보통 소다나 주스 등과 섞어 칵테일을 만들어 마신다. 그리고 이런 칵테일은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린다. ‘오르가즘’ (orgasm)이나 ‘해변의 섹스’ (sex on the beach’ 같은 이름의 칵테일도 있다. 


칵테일은 각자 주량에 따라 알코올의 양을 조절해서 마실 수 있어 좋다. 술을 넣지 않은 과일주스 칵테일은 ‘버진’ (virgin)이라고 부른다. 나 같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도 체리를 얹은 칵테일 한잔 들고 마음껏 기분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술을 매우 천천히 마신다. 다소 독한 술이라도 천천히 홀짝홀짝 마시니 쉽게 취하지 않는다. 


태평양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미술관 ‘게티 빌라’에 가면 로마시대 술잔을 전시해 놓은 것이 있다. 로마시대에는 술 취한 사람에게는 포도주에 물을 타서 주었다고 한다. 이들 술잔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특히 바닥에도 그림이 있어 술잔이 비워지면 드러나는데 하나같이 술 취한 이들의 추태를 그리고 있다. 술을 적당히 마시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고 한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다. 술 취한 친구에게 독을 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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