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공급자 시각에서 본 전세 시장의 본질
“단어 하나가 시장을 왜곡시킬 수도, 회복시킬 수도 있다.”
‘갭투기꾼’이라는 단어는 문재인 정권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 단어는 마치 전세 제도 자체가 투기의 도구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며, 전세에 거주하는 임차인들에게 ‘전세는 위험하다’는 공포를 주입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만약 역전세와 같은 부정적 현상이 전세 제도의 긍정적인 기능보다 컸다면, 시장의 자정작용으로 전세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는 여전히 존재한다.
전세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하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이해가 시장에서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갭투기’라는 왜곡된 표현 대신 ‘임차공급자’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 개념은 김학렬 소장이 사용한 ‘전세공급자’라는 말을 조금 확장한 것으로,
임대 시장의 본질을 훨씬 정확히 설명한다.
현재 정부는 각종 규제를 통해 임차를 공급하는 사람들을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다.
즉, 주택을 매매하려면 반드시 실거주해야 한다는 정책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울과 경기의 임차 비율은 이미 50%를 넘었다.
이는 단순히 ‘집을 못 사서’가 아니라,
경제적·생활적 판단에 따라 임차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매매가격이 너무 높아 어쩔 수 없이 임차로 들어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그렇게 단순히 ‘비싸다’고 정의할 수는 없다.
‘금관구’, ‘노도강’ 같은 지역은 지방보다 저렴하면서도 강남 접근성이 좋다.
강남 3이구나 마용성, 한강벨트를 제외하면 서울 주요 지역은 오히려
실거주 비용 대비 합리적인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다.
“서울이 비싸다”는 말은 결국
상위 5%의 주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부의 불만일 뿐이다.
한국의 임대료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다.
예를 들어 인구 500만 명의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소득 수준이 한국과 비슷하지만,
월세는 서울보다 훨씬 비싸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신축 주택의 공급이 시장 가격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깨끗한 집을 얻기 위해 소득에 맞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결국 한국의 전세 제도는 이런 시장 논리 속에서
효율적이고 독창적인 주거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부동산이 오른다”는 말을 농담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진보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임차공급자를 규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2 주택자 이상에게 과세를 강화하고, 차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면서 투자 동기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임차 공급이 줄고 임차 공간을 두고 경쟁이 심화되어 가격이 상승했다.
이 상황은 프랑스혁명 시절의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사건’**과 닮아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유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생산자들은 손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철수했고,
우유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굶주렸다.
선의로 시작된 정책이 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임차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임차공급자를 ‘투기꾼’으로 몰아붙였지만,
그 결과 공급이 사라지고 임차료는 오히려 상승했다.
결국 피해자는 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인 서민 임차인들이다.
‘갭투기’라는 단어는 시장을 병들게 했다.
실제로는 임차공급자가 없으면 시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전세 제도는 여전히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율적으로 이익을 교환하는 효율적 구조다.
그 균형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면,
그 피해는 결국 임차인들에게 돌아간다.
이미 전국 주요 광역시의 전세가격은 반등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부동산을 ‘투기’가 아닌 ‘삶의 공간’으로 선택하고 있다.
앞으로의 시장 역시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고, 살아야만 하는 곳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다.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언어다.
단어 하나가 시장의 흐름을 만들고, 여론을 움직인다.
‘갭투기꾼’이라는 왜곡된 말이 아니라
‘임차공급자’라는 정확한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한국의 주택 시장은 건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