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안아본 소금의 무게
복덕방을 나온 뒤, 아버지는 한동안 방향을 잡지 못했다.
앞으로도 아니고, 뒤로도 아니었다. 그는 한 발 내딛었다가 멈추고, 다시 발뒤꿈치를 끌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업고 따라왔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고개가 축 늘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볼을 눌렀다 떼었다. 한 번 더 눌렀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았다. 아이가 울면, 오늘 판 소금 값이 머릿속에서 먼저 떠올랐다. 울음 한 번에 엽전 몇 닢. 그 셈이 너무 빨리 되는 자신이 싫어서, 그는 괜히 땅만 내려다봤다.
양산 장터는 오후인데도 어두웠다. 비린내와 먼지가 섞여 코끝에 걸렸다.
아버지는 주머니 속 엽전 꾸러미를 만지작거렸다. 헝겊이 닳아, 동전의 모서리가 그대로 만져졌다. 차갑지는 않았다. 오래 품고 있어서인지, 체온이 배어 있었다.
객줏집 마루 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버지는 잠들지 못했다. 마루 위로 사람들이 오르내릴 때마다 먼지가 떨어졌다. 먼지가 눈꺼풀에 앉았다. 그는 손으로 문질렀다가, 괜히 더 따가워서 그대로 두었다.
엽전 꾸러미를 꺼내 놓고 다시 싸기를 몇 번이나 했다. 풀었다, 말았다. 풀었다, 말았다. 헝겊이 숨을 쉬는 것처럼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고, 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퍽, 퍽. 헝겊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마음에 걸려 그는 손을 멈췄고, 한동안 꾸러미를 쥔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숨이 가빠지는 걸 느끼자, 그제야 품으로 밀어 넣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객줏집 주인에게 소금 얘기를 들었다.
주인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안 썩어.”
그 말뿐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썩지 않는다’는 말이 자꾸 귀에 남았다. 쌀이 썩는 걸 몇 번이나 봤으니까. 쥐가 파먹고, 비 맞아 냄새가 나고, 결국 퍼내야 했던 기억들이 겹쳐 올라왔다.
그는 소금 자루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하얗고, 말라 있었다. 손을 넣어 보니 알갱이가 손바닥에 끼었다. 땀이 나 있던 손이라 더 달라붙었다. 떼어내도 남았다. 손금을 따라 하얗게 남았다.
엽전 꾸러미를 꺼내 들었을 때, 손이 잠깐 멈췄다. 자루 옆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고, 다시 내려놓았다. 헝겊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퍽, 소리가 났다. 그는 그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엽전을 품으로 밀어 넣었다. 그제야 숨을 쉬었다.
소금 자루를 지게에 올리는 순간, 끈이 살을 눌렀다.
아버지는 앞을 보는 대신 제 발등을 덮는 흙먼지만 보며 걸었다.
지게를 진 뒤로 세상은 바닥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소금 알갱이가 자루 틈으로 새어 나와 목덜미로 들어갔다. 따끔거렸다. 긁으면 더 아플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시장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그는 몇 번이나 쉬었다. 앉을 때마다 흙바닥이 축축했다. 엉덩이가 젖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일어나면 다시 마를 거라 생각했다. 예전에도 그랬다.
좌판을 펼쳤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금 자루를 풀어 놓고 그 앞에 앉았다. 사람들은 그냥 지나갔다. 힐끗 보고 고개를 돌리거나, 발끝으로 자루를 툭 건드리고 가기도 했다. 먼지가 일었다.
한 사내가 다가왔다. 소금을 한 움큼 집어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더니, 말없이 손톱으로 이빨 사이를 쑤셨다. 쑤시다 말고 옆 좌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그 생선, 아직 남았어?”
어디선가 대답이 돌아왔고, 웃음이 섞였다. 그제야 사내는 소금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이 값으론 안 맞아.”
돈 이야기도, 시세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열었다 닫았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금은 다른 상인 손으로 넘어갔다. 값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아버지는 엽전을 받았다. 손바닥에 올려 보니 가벼웠다. 아침에 냈던 돈보다 분명 가벼웠다. 그 차이가 어디서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언덕 위 허물어진 초가집에서 아이가 울었다. 울음은 길지 않았다.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몸은 너무 가벼워서, 안고 있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옷자락에서 소금 알갱이 하나가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집어 혀에 올렸다. 짠 기운이 퍼지며 입안이 텁텁해졌다. 그는 삼키지 않고, 어둠 속에 침을 퉤 뱉었다.
땅은 손에 쥐어지는 무게였는데, 소금은 그저 혀끝만 괴롭히다 사라지는 쓴맛이었다.
아버지는 소금 자루를 다시 묶었다.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늦을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