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_2화

바람이 그치기를

by 돈미새

밤늦게, 언덕 아래에서 낯선 발소리가 울렸다.

“어이, 여기 김 씨 댁 맞소?”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는 사람이 아니라 흙더미처럼 장정의 등에 얹혀 있었다.

불량배들에게 맞았다는 말보다 먼저 코를 찌른 것은, 터진 입술에서 스며 나온 피와, 자루 속 소금 냄새가 뒤섞인 비릿한 냄새였다. 아버지가 방바닥에 내려놓아질 때, 품 안에 남아 있던 소금 가루가 자갈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버지는 3일 동안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못했다.

갈비뼈 부근에서 꺽꺽거리는 가래 끓는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숨결이 좁은 공간을 오르내릴 때마다, 공기는 얼어붙었다.

어머니는 약을 사러 나갈 돈도 없었다. 찬물에 수건을 적셔 아버지의 얼굴을 닦았다. 수건에는 검붉은 피와, 씻기지 않은 소금 알갱이가 거칠게 묻어 있었다. 낫을 쥐던 단단한 손이, 손끝에서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다. 남은 굳은살만이, 온기 대신 방 안을 지켰다.

3일째 되는 날, 아버지는 아주 짧은 숨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비명은 없었다.

어머니는 통곡하지 않았다. 엎드린 아버지의 품에서 피 묻은 헝겊 꾸러미를 꺼냈다. 손가락을 떨며 엽전을 세는 어머니의 눈빛에는, 눈물 대신 서슬 푸른 독기가 스며 있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그가 맞으며 지켜낸 푼돈으로 우리는 내일을 살아야 했다.

아버지가 누웠던 자리에는 소금 알갱이 하나가 끝내 녹지 않고 남았다.

그 짠 기운이 방 안에 스며들자마자, 어머니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잔칫집에 가면 국물부터 들이켜고, 누군가 던진 말끝에 툭 웃음을 얹어 아낙들의 소리를 불려놓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마 위로 주름이 먼저 자리 잡았고, 눈매는 자주 굳어 있었다. 말수는 줄었고, 걸음은 빨라졌다.

새벽녘이면 어머니는 밭에서 고구마를 캐어 가마솥에 넣었다. 물이 끓어오르기 전 불을 줄였고, 김이 빠지기도 전에 꺼냈다. 아직 뜨거운 고구마를 머리에 이고 장으로 나섰다. 길가에 늘어선 천막 사이에서 어머니는 소리를 아꼈다. 손님을 부르지 않았고, 값을 흥정하지도 않았다. 고구마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말없이 몇 개를 집어 갔다.

낮에는 남의 밭으로 갔다. 허리가 반쯤 꺾일 때까지 김을 맸고, 해가 기울면 짐을 진 채 돌아왔다. 손톱 밑에는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흙줄이 박혀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볕에 그슬린 거친 살결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몸에서는 흙냄새보다 매운 땀 냄새가 먼저 났다.

밤이 깊으면 봄이는 바람을 무서워했다.

울타리 너머 대나무 잎사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는 어둠 속에서 괜히 커졌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신경 쓰이지 않던 소리였다. 그날 밤, 봄이는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쓸었다. 어색했다. 아버지가 하던 손길을 떠올려 그대로 흉내 냈다.

동생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작은 어깨가 잔기침처럼 들썩였다.

“오빠야…”

숨을 삼키듯 부르는 소리였다.

“바람이… 무서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문지방 아래로 스며드는 밤공기가 등을 훑고 지나갔다. 손과는 전혀 다른 감촉이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안 무섭다. 그냥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자라. 비 오면 밭이 좋아한다 안 카더나.”

말을 뱉자마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내 목소리가 방 안의 어둠에 부딪혀 낯설게 돌아왔다. 나는 떨림을 들키지 않으려 아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호롱불은 이미 다 타들어가 있었다. 심지가 젖은 냄새만 남아 있었다.

봄이는 내 품 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아이의 등이 내 손바닥에 닿았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체온이 천천히 옮겨왔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얼굴은, 잠들면 무언가를 놓칠 것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아이의 등을 눌렀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질까 봐, 나는 숨을 참았다.

“오빠야가 여기 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말은 방 안에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봄이는 이내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잠들지 못한 채 바람 소리를 견뎠다. 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내 몸은 굳어 있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잠든 봄이의 등을 토닥이며,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손바닥에 닿는 아이의 온기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양산_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