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흙줄
어머니는 우리를 보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말 대신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릇을 옮기다 말고 탁 내려놓거나, 문턱에 걸린 흙을 발끝으로 밀어내는 식이었다.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혀를 찼다. 그 소리가 방 안에서 굴러 오래 남았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살이 먼저 굳었다. 볕에 그슬린 볼은 매끈하지 않았고, 웃음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밭에서 돌아온 몸에서는 흙냄새보다 매운 땀 냄새가 먼저 났다. 씻고 난 뒤에도, 그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봄이는 그 사이 자랐다.
마당의 흙길을 맨발로 밟았다. 장독대 옆에서 어머니의 손을 붙들면, 손은 놓이지 않고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지나가도, 새가 날아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손에만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
아침이면 밥솥 뚜껑 위에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아궁이 안에는 전날 꺼지다 만 재가 남아 있었고, 거미줄이 그 위에서 흔들렸다.
저녁이 되어도 솥뚜껑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밤이면 바람이 스며들었다.
기둥 사이로 들어와 방 안을 긁고 지나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가 문지방에 흙을 털던 손등을 떠올렸다.
손이 먼저 기억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해, 나는 여덟이 되었다.
서당이 없어지고 학교가 생겼다.
아이들은 같은 옷을 입고 길을 지나갔다. 단추가 반듯이 달린 옷, 손때 묻지 않은 가방.
나는 나무를 했다. 산에서 내려오면 손바닥이 먼저 화끈거렸다. 날씨가 나쁘면 일이 끊겼고, 그런 날엔 나막신을 깎았다.
나무가 잘못 쪼개지면 다시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내가 만든 나막신은 잘 팔렸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막신을 내밀 때마다, 다른 아이들의 신발이 떠올랐다. 닳지 않은 밑창, 먼지 묻지 않은 끈.
해가 기울 무렵,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웃으며 떠들었고, 가방을 발로 툭툭 차며 걸었다.
나는 그 옆을 지나며 발끝만 보았다.
흙 묻은 내 발과, 깨끗한 신발이 나란히 보이는 게 싫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무를 정리하고, 물을 긷고, 장독대 뚜껑을 덮었다.
문득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어떤 소리일지 궁금해졌다.
손에 나무 대신 종이를 쥐면 어떤 느낌일까, 잠깐 생각했다가, 손을 내렸다.
생각은 돈이 되지 않았다.
아침을 한 시간 앞당겨 일어났다. 나무를 더 했다.
나무를 깎을수록 손바닥의 굳은살이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다.
소금을 쳐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살이 두꺼워졌을 때,
손톱 밑에는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흙줄이 박혔다.
그걸 보고 손을 다시 쥐었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엽전을 세어 보았다.
동전은 차가웠고, 숫자는 늘 모자랐다.
1년쯤 지나서였다.
어머니 앞에 섰다.
입안이 말랐고, 혀가 자꾸 뒤로 말렸다.
“어머니.”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학교… 가고 싶습니다.”
한참 뒤에 덧붙였다.
“제가 모은 돈으로… 다닐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혀를 차고는, 다시 흙 묻은 고구마 자루를 묶었다.
매듭을 당기는 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끊어냈다.
소년의 말은 공기 중에서가 아니라, 매듭 아래에서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