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타쿠가 부럽다.

- 공황장애 기록

by 공황돼지

우울증 기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공황장애보다 까마득히 높은 레벨에 있다. 공황장애가 어떤 상태이든 우울증은 불안을 창조해버린다. 무엇을 해야 즐거울까. 내가 좋아하던 게 뭐였지? 나에게 무엇이 제공되면 나아질까? 사는 이유가 뭐였지?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가져다주어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모르겠다. 불안장애는 3가지 소원까지도 필요 없다. 돈과 건강이면 끝이니까. 반면 우울증은 근본적인 물음이 앞선다.


"소원을 이루면 뭐가 달라져?"


이제는 어렴풋 이해한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던 이들의 극단적 선택이. 다행일까.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증상에 관한 의문이 깊어지는 요즘, 우울증이 심하던 지인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충동구매를 자주 했다. 장난감 수집이 취미인, 속된 말로 오타쿠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충동구매도 우울증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어쨌든 그 사람 장난감을 사는 순간만큼은 삶의 의욕을 보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무엇이 삶의 의욕을 자극하는가. 성공? 드라마에서 '조기 정년퇴직 38선'이라는 대사를 듣고 난 후, 작은 불씨마저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건강한 삶? 종합 검진을 받으면 죽을 날을 받아 올 것 같은 몸 상태다. 가족을 향한 책임감은 어떤가. 자식은 없고 부모에게는 만회할 수 없을 만큼 죄를 짓고 살고 있다.


"즐거운 것이라도 떠올려보자."


우울증을 달래려고 드라마를 찾아본다. 괜찮은 작품을 발견하면 하루 이틀은 떨쳐내기 때문이다. 작품의 스토리와 배우가 어쩌고 저쩌고는 관심 밖이다. 유튜브 시청 이유도 그렇다. 피식하고 웃을 수 있음을 기대할 뿐 특별한 주제를 즐기지는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30대 후반이면 게임에 흥미를 잃는다고 하더라. 축구? 수집? 아이돌 덕질? 모르겠다. 나는 한평생을 무언가에 열광해본 적이 없다.


살면서 집착했던 것들을 떠올려봤다. 이성을 향한 관심은 본능일 뿐이었고, 게임에 집중했던 이유는 도박성 심리가 강했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호기심도 적었다. 애니메이션이나 스포츠에 열광하던 친구들을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열광하는 심리가 그것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여서 싫었다.


아이돌 뮤직 비디오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게임 디아블로의 발매 소식에 수염 한가득한 중년 아저씨가 괴성을 지르고, 누군가는 귀신에 홀린 듯 UFO 정보를 수집한다. 오타쿠. 또는 덕질이라 말하는 그것들이. 나는 너무나도 부럽다.


요즘 덕질할 거리를 찾는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프라모델과 레고. 프로그래밍에 매력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짧은 성취감과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그밖에 잠깐씩 취미를 붙였던 것들도 관심 끌기가 목적이었다. 오타쿠는 이유가 없다.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탐구.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열정이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우울증을 떨쳐내는 수단으로 오타쿠가 되고 싶었다. 대상을 정해서 파고들면 오타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음 섞인 몰입은 열정이 되지 않았다. 그들 열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특정 오타쿠는 심리학 측면에서 질병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고래'다. 왜 하필 고래였을까. 고래를 떠올릴 때마다 느꼈을 그 감정. 새로운 정보를 얻었을 때의 기쁨.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면 새로움이 싹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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