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황돼지 Jan 02. 2023

독서를 시작했다.

- 이제 와서 독서를 하시겠다?

 '독서를 하지 않는 글쟁이'. 괴짜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독서는 귀찮고 재미가 없었다. 판타지 소설을 제외하면 평생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맹세한다. 포기한 분량을 합하면 몇 권은 된다. 하지만 그걸 독서였다고 하느니 국사 교과서를 삼국사기라고 말하겠다. 20대의 시작은 인터넷 정보 과잉. 30대의 시작은 '전 국민이 유튜버'였다. 독서는 정보 검색에서도 시간낭비였다.

 

 블로그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시작했으니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글 잘 쓰는 법'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에 놀랐다. 어쨌든 양질의 정보를 취합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작가의 노하우. 조회수가 높은 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던 경험담.


- 반복을 피해라.

- 문장은 짧고 명확하게 써라.

- 수동적 표현을 최소화해라.

- 독서를 해라.

- 꾸준히 써라.

- 일단 지금 써라.


 독서를 하라는 조언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머지는 논술 시험 노하우랑 비슷했다. 오랫동안 바라본 문장은 "일단 지금 써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취미가 벌써 5년. 포기했던 기간을 빼면 2~3년 정도 쓴 것 같다. 물론 독서는 없었다.


 포기와 재시작이 한계를 외쳤다. 인생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책 <힘 있는 글쓰기>를 샀다. 463페이지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참고서일 뿐 독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이리저리 굴렀다. "이게 뭐지? 고문 같은데 착각인가?" 독서가 아닌 공부를 어떻게든 끝냈다. 고통의 보상은 '자유로운 쓰기'라는 훈련법과 '피드백의 중요성'이었다.


 작가 피터 엘보는 간과한 게 있었다. 글은 잘 쓰고 싶은데 독서를 한 권도 하지 않은 독자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조언을 검증했고 효과적이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성장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자유로운 쓰기를 실천했고 '피드백 동냥'도 마다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가 예상한 독자의 성장 밑바탕에는 독서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피터 엘보가 '독서를 안 하는 백수'를 위한 노하우를 담았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그의 조언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나는 독서를 강조하는 글을 많이 썼다. 독서도 안 하면서 말이다. 이 부분은 변명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인용문을 거의 안 쓴다. 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독서를 하는 사람인 척하는 게 싫었다. 다이어트에 필요한 두 가지는 운동과 식단이다. 말하는 사람이 뚱보면 어떻고 몸짱이면 어떤가.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독서를 강조했던 논리, 또는 합리화다.


 현실은 조금 달랐다. 사람들은 배가 튀어나온 의학박사 조언보다 몸짱 유튜버의 운동법에 열광했다. 브런치도 그렇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일단 글을 잘 써야 주목받는다. 나는 잘못생각하고 있었다. 의미만 전달하는 수준에 만족했고 나머지는 진심과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취미 5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진심으로 잘 써보고 싶어졌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보편적 방법 중 내가 하지 않은 것은 독서다. 이제 할 수밖에 없다. 




 <힘 있는 글쓰기>는 냄비받침대로 활약하다가 은퇴 후 책장에 서있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신세였다. 물티슈로 한참을 닦았다. 선택의 이유는 없다. 집에 있는 책이 그것 단 한 권이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읽었다고 생각한 그 책은 339페이지에 책 표지가 침투해 있었다. 책이 하려던 말을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안 읽었나 보다. 첫 장부터 다시 보는 게 맞지만 시작부터 껄끄럽기 싫었다. 나머지 100여 페이지를 한 번에 읽었다. 아니, 읽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첫 독서(나머지 100여 페이지)는, 내 글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독서에서 글쓰기로 가는 방향을 이론 공부 후 문제풀이라고 가정한다면, 역주행은 문제부터 다 틀리고 해설을 접하는 감각이었다. 당연히 전자가 효과적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가 독서에 미치는 영향이고, 효과가 조금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부터 시작할 독서. 읽는 재미가 식더라도 나의 글과 비교하는 재미만큼은 보장할 것이다. 글쓰기를 지속한다면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