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는 짧아야 메모인가
내가 생각하는 메모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실을 기록하는 메모. 또 하나는 생각을 적는 메모. 두 가지 메모의 공통점은 '신뢰할 수 없는 기억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꺼내보면 전자는 명확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 차이는 오래된 메모일수록 명확했다. 주소, 비밀번호, 연락처는 몇 년이 지나도 알아보았지만, 생각을 적어 둔 메모는 왜 적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힘 있는 글쓰기>라는 책에 '생각의 기억'이라는 표현이 있다. 글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생각이고, 글은 결국 생각을 기억해내서 쓴다는 의미였다. 산책 중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지만 집에 돌아와 키보드를 잡으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 생각을 적어야 하는데 생각했던 기억을 적으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자유로운 글쓰기' 훈련을 중요시했다. 타이핑을 멈추지 않고 생각을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욕을 써도 되고 "생각이 안 나는데 어떻게 타이핑을 계속하라는 거야?"라는 말까지도 그냥 쭉 적는 것이다. 작가의 맥락과는 다르겠지만, 생각의 기억과 자유로운 글쓰기에서 나는 생각을 적는 메모를 떠올렸다.
사물에 대한 메모가 있다. "위쪽이 뾰족함.", "날개가 있음." 메모가 많을수록 정보전달에 효과적일 것이다. 요즘은 사진과 영상이 대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비유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실제로 그 사물이 있는 장소에 다시 찾아가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생각은 사진과 영상으로 담을 수 없다. 다시 찾아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생각의 메모 실패가 뼈 아픈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생각이 날 때 바로 글을 써버리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글이라는 게 그랬다. 맞춤법부터 문장의 구조와 적절한 어휘 따위를 고민하는 와중에 생각은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자유로운 글쓰기'였다.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쉬지 않고 적었다. 1초도 멈추지 않기 때문에 1분만 써도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생각을 메모할 때는 더 상세하고 명확히 쓰자는, 당연한 소리를 참 어렵게 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확신은 못해도 차이는 적지 않았다. "기억하기 쉽고! 정확히 메모하자!"라고 마음을 먹을수록, 그 자체가 짧은 글쓰기가 돼버렸다. 기억되기 쉬운 문장을 떠올리려는 또 다른 생각. 생각이 날아가기 전에 메모를 끝내겠다는 생각. 온전히 기록하려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했고, 그것이 자유로운 글쓰기였다.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지만 자유로운 글쓰기는 훈련 효과도 있어서 일석이조라는 장점도 있었다.
메모의 분량이 본문보다도 많을 때가 있다.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보이더라도 생각을 메모한 것을 못 알아보는 실패가 현저하게 줄었다. 뇌는 우주와 같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의식의 흐름을 단 몇 마디로 메모할 수 있다면 이미 훌륭한 작가이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글쓰기를 위한 메모 이야기다. 다른 곳에 적용시키면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