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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Dec 27. 2022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 글 쓰는 마음

"글쓰기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도움을 주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글쓰기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일 뿐이었고, 평가를 기다리는 반복이었다.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아니, 그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위로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과다. 독서를 안 했으니까. 나의 글쓰기는 마치 게임을 해보지 않고 게임을 만드는 발상과 유사했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면 게임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이 성공하려면 창조에 가까운 창작이 있던지, 압도적인 기술력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쪽도 없었고, 글쓰기를 관두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그렇게 감정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자기 객관화도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진 경험은 평생 한 두 번이 전부였고,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외계인 보듯 했던 사람이다. 감수성과 공감능력이 낮다는 자각이 세질수록 글을 쓸 용기는 작아졌다. 시와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 역량만이 작가라는, 이른바 '작가 공포증'의 영향도 있었겠다.


 2017년 4월. 블로그에 첫 번째 글을 올렸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결과는 덮어두고 쓰는 행위 자체가 장점이었다. 비판하려던 마음이 글을 쓰면서 반성으로 바뀌기도 했고, 시작점에서는 예측할 수 없던 사색의 확장이 반전 드라마처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기만족, 좋게 표현하면 자기 계발이었을 뿐 읽는 이들을 고려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어. 어때?"

"오늘 경험은 이런 느낌이었어. 무슨 말인지 알지?"

"피드백을 부탁해요."


 도움을 바라는 글은 읽히지 않았다. 읽는 사람도 도움이 필요했을 테니까. 환자가 환자에게 얻을 것을 떠올려야 했다. 정보공유, 고통의 공감, 진심 어린 위로 같은 것 말이다. "내가 더 아프다.", "나는 글렀다.", "나 좀 도와줘."같은 메시지만 가득한 글은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글을 쓰는 포지션이 의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은 극복 또는 성공을 경험했다. 무면허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의 프로필과 경력은 대부분 진짜다. 무면허 의사는 하기 싫고 의사가 될 능력이 없던 나는, 글쓰기를 또다시 관뒀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후에도 공격적인 글투와 가르치려 드는 고집은 고쳐지지 않지만, 읽는 사람을 배려하자는 생각을 염두에 둔다. 위로까지는 아니어도 정보를 나누자는 의지. 환자도 환자를 위로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이 글은, '독서를 하지 않는 30대 이과 출신이 포스팅 400~500개를 작성한 후 필력'이라는 정보가 될 수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공감을 유발할 수도 있고, 낮은 확률로 위안이 될 것이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는 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도 중요하지 않을까. 고객의 니즈를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바꾸자는 소리가 아니다. 도움을 바란다면 도움을 줘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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