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틸워터
"형은 음악 듣다가 우는 거 이해가요?"
"어. 나도 울 때 있는데?"
"?"
"??"
프로그래밍 공부를 함께하던 지인의 예상치 못한 대답. "이과 계열 20대 남성은 음악 듣고 울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10여 년 전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면 충격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것이 편견이었음을 알지만 본질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추측이 유일한 단서다.
넷플릭스 추천 목록에 <스틸워터>라는 영화가 떴다. 2021년 개봉인데 제목이 낯설다면 보통은 지뢰다. 마우스 커서가 ✖️를 향하던 중 '프랑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읽은 책 <시크 : 하다 : 이기적이어서 행복하다>는 프랑스에 관한 에세이다. 머릿속 구석에 박혀있는 프랑스가 신경 쓰였다. 네트워크를 확장시키지 않으면 독서 효과는 기억과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 클릭한 이유는 독서 때문이었다.
에세이 하나 읽었다고 프랑스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이 아빠를 어쩌다 어울린 남으로 묘사하는 등장인물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 속 일상장면도 그랬다. 예를 들어 비싼 돈 주고 베이비 시터를 고용하는 스토리가 있는데, 프랑스는 아이를 혼자 두는 것이 불법이라는 책 내용이 떠올랐다. 아이가 있는 식탁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자 미국인 주인공이 불편해한다. 한 달 전 나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장면이다.
이해는 몰입으로 이어졌다. 어쩌다 클릭한 <스틸워터>가 인생 영화 탑 10이 되다니. '노잼'이라며 폄하한 영화들이 떠올랐다. "내 지식이 모자랐던 게 아닐까?" 물론, 작품을 이해하는 회로는 그보다 복잡할 것이다. "상 받은 작품은 난해해서 즐기기 어렵다."라는 말은 영화뿐 아니라 그림과 소설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음악 듣고 울었다던 지인이 독서를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작은 단서는 얻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 책에서 감동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느끼지 못한 것을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감수성 넘치는 글, 문학적인 글을 못 쓰는 원인이 재능이 아닐 수 있다는 단서. 다음 단서도 어딘가 있겠지. 예상보다 흥미로운 전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