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력의 총량.
게임 현금 거래를 업으로 삼는 일을 천박하다고 여겼다. '온라인 게임 중국인 작업장'에 관한 인식 때문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은 MMORPG 천국이었다. 유저 간 현금거래가 활발했고 시세는 당시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이 기준이었다. 중국인 입장에서는 노다지였던 셈이다. 중국인은 여권과 비자 없이 한국의 아르바이트 시급을 창출했다. 그들의 목적은 돈이었기 때문에 게임 속 문화와 룰을 따르지 않았다. 불법 프로그램과 핵(Hack) 사용은 기본이었다. 그로 인한 부차적인 피해는 선량한 한국인 유저의 몫이었다.
시장논리로 이해하면 쉽다. 게임 속에서 황금을 채집한다고 가정해 보자.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한 정공법은 한계가 있다. 중국인 작업장은 자동화(오토)와 핵으로 효율을 높였다. 시장에 풀리는 황금의 수량이 많아지며 황금의 가치가 떨어졌다. 한국인은 자신이 채집한 황금을 낮은 가격으로 팔아야 했다. 시간이 흐르자 황금을 채집하는 한국인이 사라졌다. 시장 경제가 망가지며 자산 즉, 한국인의 아이템 가치가 급락했다. 오토와 핵은 명백한 룰 위반이었지만 무한히 증식하는 중국인 계정은 손쓸 방도가 없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게임사가 '자동 사냥(오토)'을 정식 도입했다. 황금 채집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게임사의 배려였을까? 한때는 불법이라며 단속했던 기능이 합법이 되었다. 원인은 다양하다. 당시 세대가 3040이 되면서 게임 플레이 시간이 적어졌고, 황급 채집(노가다)은 낡은 시스템이어서 재미를 느끼는 유저도 급감했다. 게임사는 '접속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위와 같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게임 부업이 꺼려졌다. 내적갈등을 겪으며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생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도했던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였다. 더 이상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 합리화를 도왔다.
선택폭은 많지 않다. 리니지시리즈, 나이트크로우, 프라시아전기, 아키에이지워, 오딘이 대표적이다. 나는 아키에이지워 2개, 나이트크로우 1개, 총 3개의 클라이언트를 돌렸다. 모바일 게임을 PC에서 구동하기 때문에 컴퓨터 사양은 문제 될 게 없었다. 보통 컴퓨터 1대에 6개 정도를 돌리는 것 같았다. 계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리스크가 있다. 게임 약관에도 명시되어 있는데, 현금화를 목적으로 한 다계정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작업장의 정의와 제재의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게임부업에서 중요한 마인드는 수익만을 위한 질주다. 캐릭터에 애정을 갖거나 게임에 재미를 붙이면 안 된다. 자동사냥이 허용되는 게임은 투자를 하지 않고는 즐길 수 없는 시스템이 대부분이다. 모자를 사줄까? 칼과 방패를 사줄까? 저쪽에는 뭐가 있을까? 게임을 즐기기 시작하면 재화가 모일 수 없는 구조다. 게임을 철저하게 도구로 이용하지 않으면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5월 한 달 수익 내역이다. 5월 2일 269800은 기존에 하던 다른 게임을 정리하여 얻은 것이다. 나머지 40만 원이 나이트크로우 1개, 아키에이지워 2개를 돌려서 얻은 수익이다. 여기서 꿈같은 시나리오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3 계정에 40만 원을 벌었다. 6 계정을 돌리면 80만 원. 컴퓨터 3대를 돌리면 240만 원이 된다. 30대를 돌리면 월 2400만 원이다.
위와 같은 논리는 파라다이스를 꿈꾸게 해 주지만 현실은 계정압류다. 사람들은 제재를 피하고자 IP를 여러 개 확보하고 최대한 와이파이로 접속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다 보면 계정도용이나 편법에 손을 대고 중국인 작업장과 다를 게 없어진다. 이 부업의 딜레마다. 내가 3개만 돌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합법/불법에 관한 이슈도 있다. 합법이라는 판례는 있다. 아이템거래 중개사이트도 사업자등록번호가 있으며 현금영수증도 나온다. 법에서 중요시하는 부분은 '도박성', '사행성'이다. 예를 들어 고스톱, 포카류 게임의 현금거래는 위법이다. 이와 관련된 이슈는 2000년대 후반 대법원 판결이 화제였다.
1) 개인이나 작업장이 2) 오토, 해킹 등 불법적 방법을 이용하여 만든 물량을 3) 직업적으로 판매' 하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만 아니라면 굳이 처벌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현재 현금거래에 대한 정책적, 법적 입장.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5752&site=r2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점은 있다. 합법과 불법 사이 '그레이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다음 기사도 읽어볼 만하다. https://www.fnnews.com/news/202111120928321702
원래는 2번 항목 '오토', '해킹'이 불법이었는데 게임사가 '오토'를 시스템에 편입하며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오토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이라면 불법이다.
자동사냥은 내가 누워있든 밥을 먹든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캐릭터가 죽어있을 수도 있고 점검 때문에 접속이 끊어져 있을 경우도 있다. 소모성 아이템이 떨어지면 리필도 해주어야 한다. 인벤토리가 꽉 차기 전에 아이템을 경매장에 올리고 시세도 확인해야 한다. 거래를 할 때는 사기꾼을 경계해야 하고 개인정보도 조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겨우 3 계정을 하는데도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다.
자동인데 퇴근이 없다. 규모를 늘리면 불법이다. 능력에 따른 편차도 상당하다. 진짜 노하우는 절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직접 부딪치며 얻어야 한다. 여기서 소모되는 노동력이 만만치 않다. 이게 어떻게 자동이란 말일까? 투자한 노동력 대비 수익을 감안하면 손해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민감한 사람은 신경이 쓰여서 잠을 설칠지도 모르겠다. 월급에 준하는 수익이 목표라면 노동량은 직장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기를 추가로 구비해야 하기 때문에 목돈이 들어간다.
게임부업에 혹하게 만드는 키워드는 '자동'이다. 공장이 제품을 자동으로 찍어내면 공장 근무자는 '자동 직업'일까? 하루 30분만 투자하고 머리에서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할만한 부업이다. 나는 예민한 편이라서 피로감이 있었다. 그 이상은 나에게 중노동이나 다름없다. 게임부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시장 자체가 증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행이 지나거나 시스템이 바뀌면 당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