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케로의 우정에 대하여
<키케로의 우정에 대하여>는 브런치 이웃이 추천해 준 책이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키케로는 많은 저서를 남긴 로마의~... 솔직히 잘 모른다. 그의 저서는 난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보통 그러한 책들은 읽는 과정이 고통이었다.
약간은 여유로울 때, 읽을거리가 없을 때, 철학을 등한시한다는 경고음이 들려올 때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진정 여유로움에도 읽을거리가 없으며 철학에 굶주리는 때가 있기나 할까? 이제 막 100여 권에 도달한 짧은 독서 경력이 만들어낸 오류였다. 눈앞에 도착한 키케로는 161p 분량이었다. 삽화와 여백이 많아서 체감상 100p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예상보다 10배는 읽기 쉬웠다. 미뤄두기만 하던 책을 읽어보자!
최근 읽었던 책의 맺음말에 적혀있던 글이다. 그 책이 훌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귀와 공감되는 철학이 있었다. 열 가지 중 아홉 가지가 별로여도 나머지 한 가지가 무겁다면 성공한 독서다. 그리고 열 가지 중 열 가지가 엉망인 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시각이 형성되는 데에 많은 오류가 있었다. "이 책은 쓰레기야!", "작가가 돈에 환장했네."라며 읽었던 책들조차 돌아보면 한두 가지는 남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책이 쓰레기인 이유를 추론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와 사고력 확장을 얻었다.
타율은 중요하다. 9할이 1할보다 읽을 가치가 있음은 명백하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은 합당하다. 하지만 오류이기도 하다. 1할이 9할에 종속되는 책은 학습서와 문제집이다. 어떠한 1할은 9할 9푼의 책 100권에서도 얻지 못한다. 낮은 타율에서만 발견되는 지식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책을 선택하는 두려움을 덜어주어 미지의 세계를 가깝게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고르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키케로의 우정에 대하여>가 1할은 아니지만 9할도 아니었다. 키케로는 수많은 세월 동안 검증되었다. 내가 놓쳤거나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 많을 것이다. 반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를 하는 부분이 많았고 철학적인 지식은 미지근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어서 적어두기로 했다.
죽고 나서는 영혼과 육신이 동시에 사라져 아무런 감각조차 남지 않는다면, 죽는다고 좋을 것도 없지만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아무 감각이 없다면 그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
▶ 죽음이 좋을 것도 없지만 나쁠 것도 없다는 쿨한 멘탈이 인상적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겪고 지나치리만치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친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다.
▶? 일단 적어둠.
우정과 막대한 권력이 양쪽에 놓여 있다면 우정이 아닌 권력을 선택하려는 사람이 더 많지 않겠는가? 인간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 힘들 정도로 나약한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우정을 저버리고 권력을 얻었다고 해도, 그만큼 중차대한 이유로 친구를 버린 것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본인의 과오가 잊힐 거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높은 관직에 있거나 정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우정을 쌓기가 힘든 것이다. (중략) 이것에 대해서는 엔니우스의 말이 백번 옳다. "어려울 때 곁에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중차대한~과오가 잊힐 거라고 기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부조화'의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려울 때 곁에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말이 기원전부터 있었다니 새삼 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치판에 진정한 우정이 없다는 클리셰도 마찬가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정은 모든 인간의 삶에 어떻게든 스며 있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타인과 우정을 맺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비록 아테나이의 티몬처럼 태생적으로 무뚝뚝하고 비사교적인 성격을 타고나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도 투덜거리며 불만을 쏟아낼 상대가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티몬 - 그리스의 철학자. 아테네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회의적 사상가다.
▶그냥 내 이야기 같아서 적었다. 나의 푸념을 들어주는 친구를 소중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