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98권
개인적인 이유로 8월과 9월은 독서를 하지 못했다. 복귀는 소설이 편할 것 같았다. 여름 내내 대여중이어서 빌리지 못했던 <작은 땅의 야수들>을 골랐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파친코>의 영향이 크다. 나의 2023년 드라마 1위가 <무빙>이라면 2022년에는 <파친코>였다. <무빙>이 넷플릭스가 아닌 디즈니여서 인기가 덜 했다는 말이 있다. 내 생각에 <파친코>도 애플이어서 화제가 덜 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작품이다. <파친코>와 같은 배경의 작품이 연달아 나오다니 이례적인 일이다.
목차를 기준으로 하면 1918~1964년이지만 중심 사건은 일제의 정중앙을 다룬다. 기본적인 역사는 논픽션에 근거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픽션이다. 예를 들어 하얼빈이나 도시락 폭탄이 언급되긴 하는데 행위자가 가상의 인물이거나 사건의 변형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근대사를 부족함 없이 표현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며, 대다수는 그중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 그 자리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는 시점은 놀랍도록 일러서, 대체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도달한다. 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 또한 서른에서 마흔 살 사이에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 일부 사람들은 출생 환경이나 그 자신의 야망, 그리고 재능에 힘입어 대략 쉰 전후에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데, 그 정도 나이에 이르면 이러한 소강도 그렇게 끔찍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몇몇 챕터는 흥미로운 철학으로 시작한다. 철학은 등장인물에 녹아있기도 하고 사건을 암시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아서 적어둔 것도 있다.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고유한 의미를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지 않으면 각자의 인생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첫 장면의 여운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연과 필연을 오가는 인물 관계와 사건의 연결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처음과 끝을 정해두고 쓰기 시작했을까? 호랑이가 등장하는 도입부와 소설의 끝이 마치 종이의 앞뒷면 같았다. 스토리를 이루는 뼈대는 사랑, 성공, 일본군, 기생, 독립운동, 중후반에 등장하는 이념갈등이다. 분량은 600p가 넘고 글자가 빼곡한 편이다.
요즘 들어 이념과 역사적 인물에 관한 해석에 예민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작은 땅의 야수들>은 픽션이다. 최고의 떡밥인 친일과 반일, 그리고 이념갈등을 다루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역사적 논란은 무의미하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스토리를 즐긴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소설의 순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