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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Jun 21. 2023

한국의 비소설을 읽는 인식

-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의 <어른의 어휘력>을 읽었다. 나는 독서 이력이 짧음에도 한국의 비소설을 기피했다. 내가 아는 세계적 석학은 모조리 외국인이고 한국은 철학과 자연과학 따위에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른의 어휘력>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말'에 관한 도서였기 때문이다.


'문장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걷어내라.'는 조언을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으나 영어 등 서양 언어에 해당하는 조건이다. 우리말에는 '수식어를 남발하지 마라'해야 정확하다. 우리말에서 부사는 용언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품사지만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로 동사와 함께 용언이다. 형용사를 쓰지 않으면 아예 문장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어른의 어휘력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부사와 형용사 사용을 줄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세계적 작가인 스티븐 킹의 조언이 한글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의 도서 선택을 칭찬했다. <어른의 어휘력>은 철학에 관해서도 말하는데 세계 석학의 사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특히 신화와 격언을 인용하는 부분은 그동안 읽어왔던 서양 작가 누구보다 와닿았다. 나는 알게 모르게 한국의 비소설에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편견의 근원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수학과 영어의 대표 학습서였던 정석과 성문 영어는 일본인이 쓴 것을 번역했다. 영어 문법 용어 '부정사'를 보자. 한국인의 감각에서 보자면 '부정사'에서 "정해져 있지 않다."라는 의미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일어(ふていし [不定詞])는 명확하다.


 니체의 인용과 번역을 살펴보자. 니체를 인용한 Tom의 글을 번역한 책이 있고, 번역된 니체를 읽은 홍길동이 니체를 인용한 사례가 있다. 번역된 Tom의 글에는 '부정사'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내가 Tom을 선호했던 이유는 홍길동이 니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편견' 때문이다. 과거에 우리나라 영어교재를 만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60~70년대 기준이라면 일본이 한국보다 영어 교육에 능숙하다고 여겼을 게 당연하니 말이다.


영어 - 일본인 교육자 - (번역) - 한국인 독자

영어 - (번역) - 한국인 교육자 - 한국인 독자


니체 - Tom - (번역) - 한국인 독자

니체 - (번역) - 홍길동 - 한국인 독자


 현실적인 문제는 있다. Tom은 있는데 홍길동이 없는 분야가 많다. 그리고 대체불가능한 스페셜 Tom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정 분야는 홍길동이자 번역가가 되어 이중고를 견뎌야 한다. Tom보다 홍길동을 선호하는 국수주의까지 갈 필요는 없다. 홍길동을 차별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발전할 것이다. <어른의 어휘력>을 읽고 한국의 비소설에 관한 편견이 사라졌다.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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