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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Oct 22. 2023

내가 무식한 이유

- 지식의 스노우볼 효과

나의 지능 객관화

 초등학교 때 했던 IQ검사 결과는 충격적인 기억 중 하나다. 나의 IQ는 간신히 100을 넘었다. 학교 성적은 좋았기 때문에 내심 높은 IQ를 기대했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 똘똘하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는데, 돌이켜보면 엉뚱한 발상에서 탄생한 창의력 또는 게으름이 낳은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나는 음악시간 동요의 가사를 외우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고 수학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따라가지 못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성적이 급락하거나 급등하는 아이들이 많아."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현상은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에도 반복되었다. 나는 급락하는 부류 중 하나였는데 "열심히 하지 않았잖아."라는 한 마디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뭔가 억울했다. 나와 똑같은 스케줄을 공유하는 친구들 중 몇몇은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당히 놀면서도 성적을 유지했던 부류의 공통점은 독서가 취미이거나 IQ가 120 언저리였다.


"노력도 재능이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사소한 학습법의 차이가 돌이킬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


 위와 같은 변수를 배제하면 어떨까? 실험이 불가능해도 직관으로 알 수 있다. 조건이 동일하다면 성적은 지능 순이다. 지능은 기억력과 이해력을 기반으로 한 추론 능력이다. 이해를 하려면 단서를 암기해야 한다. 이해를 못 하면 휘발되는 암기도 있다. 기억과 이해의 상호보완된 지속은 '어느 시점'부터 가속이 붙는데, 그것이 지식의 스노우볼 효과다. 내가 무식한 이유는 스노우볼을 작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노우볼의 개념과 영속성

 작은 눈덩이가 산을 타고 굴러 내려오며 커지는 현상. 시작은 미약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급격히 팽창하는 개념을 일컫는다. 수능이 목적지라면 스노우볼의 크기는 보통에 머물지만, 인생의 종착점까지 굴러간 스노우볼의 크기는 너무나 거대한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프렌즈 같은 시트콤을 보고 영어를 익혔다는 일화가 많다. 하지만 실패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지루함, 노력 부족, 집중력 부족, IQ 미달, 기초 부족 등 오만가지 원인이 있다. 반면 성공한 사람들의 후기는 일관성이 있다.


"그냥 보기만 했는데?"


 스노우볼이 발동되는 원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 자신이 평범한 IQ에 영어 기초가 부족하다면 스크립트를 보는 것이 맞다. 지엽적이고 어려운 부분을 스킵하는 융통성이 요구될 수도 있다. 더빙판을 보고 내용을 숙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든 부분적으로 들리기 시작하도록, 즉 스노우볼을 굴리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들려오는 모든 영어는 공기의 진동에 불과할 뿐이다.


 영어의 스노우볼을 작동시킨 사람은 평생 보게 될 수백 편의 미드가 '학습'이다. 노력 여부에 따라서 스노우볼의 성장 속도는 다르겠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스노우볼을 작동시키지 못한 사람은 수천 편의 미드를 보아도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일본어 학습에서 유사한 경험을 했다. 20대 초반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았지만 '히사시부리', '오하요', '고멘' 따위의 유행어를 아는 게 고작이었다.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한 후부터는 모든 애니메이션이 복습이자 학습이었다.


 굴러가기 시작한 스노우볼은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스노우볼은 복리와 같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막대한 차이를 가져온다. 초등학교 때 전교 1등인 친구를 보며 단순히 "따라잡을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전교 1등은 잠을 줄이고 과외받고 게임을 끊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고등학교 1등은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는데, 서른이 넘자 이번 생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노우볼의 강력함은 '가속'이다. 조건이 같다면 후발주자가 영원히 추월할 수 없다.



스노우볼의 함정

 조기 교육은 스노우볼 이론을 적극적으로 채용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현실의 비탈길은 경사가 불규칙하고 눈도 골고루 쌓여있지 않다. 여러 개의 스노우볼을 운용하는 것도 힘들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누구도 스노우볼을 소유하지 않은 영역이 생겨났다. 만들어둔 스노우볼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현실속 스노우볼은 영원히 굴러가지 않는다.


 가장 큰 함정은 배움이 무한하다는 착각이다. 어떤 분야든 필수 지식이 몰려있는 구간이 존재한다. 스노우볼이 맹렬히 팽창하는 영역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평지를 달린다. 초보자가 영어 단어 5000 개를 외워낸 것과 100,000 단어를 외운 사람이 5000개를 더 외운 것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스노우볼 개념의 핵심은 볼의 형성과 유지에 있다. 이후에는 창의력과 운의 영향도 받게 되며 천천히 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현실 속 스노우볼은 언제든지 추월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작은 스노우볼이라도 몇 달은 투자해야 굴러간다. 함정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스노우볼의 구조

 스노우볼 구조의 핵심은 기억력이다. 선천적인 IQ와 복습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결국 재능이야?" 좌절하기보다는 각자의 패턴을 찾아야 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르면 학습 후 1시간이 경과하면 50%를 망각하고 1일 후에는 70%를 망각한다. 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나의 망각'이다. 만약 자신이 1일 후 80%를 망각하는 사람인데 70%를 기준으로 복습을 한다면 꾸준한 누수가 발생한다. 기대만큼 스노우볼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낙담하고 포기할 확률이 높아진다. 습관 형성은 66일이 소요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그 실험의 편차는 30~200일이다. 자신이 200일에 해당한다면 3배를 견뎌야만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지능이 낮으면 더 열심히 해라."


 인간은 평등하고 세상은 공정하다는 착각이 조언을 모욕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책을 완독해도 인물과 지명을 굉장히 빠르게 잊는다. 나보다 그 책을 오래전에 읽은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이 나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고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객관화'다. 나는 명백한 하위 그룹이었다. 이것이 내가 무식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뇌과학 서적을 보면 '인출'과 '기억의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뉴런과 시냅스의 상호작용 어쩌고 하는 원리다. 우리가 '사과'라는 단어를 잊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백설공주, 아이폰, apple.

- 미술시간에 그렸던 과일.

- 사과를 훔쳐서 사과했다.

- 충주사과, 대구사과.


백설공주를 망각해도 사과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많다. 하지만 사과를 인출하는 통로가 백설공주뿐이라면 망각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사과를 인출할 수 없다. 시험을 칠 때 기억이 날듯 말 듯하면서 결국은 틀려버리는 그것이다. 지능이 낮은 사람은 연결이 자주 끊긴다. 때문에 네트워크 확장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지능이 낮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스노우볼을 완성시키면 평균 이상으로 수렴한다. 백설공주를 망각해도 사과를 떠올릴 수많은 단서가 있고, 그 단서들 중 몇몇은 돌고 돌아 백설공주를 인출할 단서와 연결된다. 스노우볼은 기억의 네트워크를 촘촘히 엮은 덩어리다. 망각과 회복은 기억력을 견고하게 해 준다. 흔히 알고 있는 복습의 원리와 같다. 지능이 부족하면 복습의 주기를 좁혀라? 결국 더 열심히 하라는 소리다. 



스노우볼의 불편한 진실

 사실 스노우볼은 평균 이상의 IQ가 상식과 지식을 쌓는 원리를 설명하기 적합한 개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역시 자기 객관화가 안된다. 자신이 10개 중 8개를 기억한다면 타인도 그럴 것이라 여긴다. 전교 1등이 하위권 친구에게 무언가 가르치려 할 때 감지되는 답답한 그것이다. 1등도 충분한 노력을 했겠지만 지능이 낮은 사람이 스노우볼을 만드는 데에 겪는 좌절과 고통과는 달랐을 것이다. 스노우볼이 빠르게 형성될수록 포기할 확률이 급감한다. 성취감도 높다. 높은 지능이 스노우볼 형성에 유리한 것은 팩트다.


 현대사회, 그중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사회일수록 IQ를 경계한다. 태생적 지능을 강조하면 "기회는 평등하다.",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선한 형향력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우생학이 불러온 역사의 잔혹함 때문에 더욱 경계하는 분위기다. 선천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노력, 학습법, 환경 등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재능의 불평등을 감추는 도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환생할 계획이 아니라면 도구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낮은 지능으로 태어난 것을 불평만 하다 보면 객관적으로 무식한 사람이 될 뿐이다.


 우리 사회는 불편한 진실을 싫어한다. 대표적으로 마약이 있다. 니코틴의 중독성이 어지간한 마약보다 지독하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팩트가 안 좋은 결과를 끌어낼 우려가 있어서다. IQ를 강조하지 않는 풍토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지능이 학습에 끼치는 영향이 알려질수록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그저 성실함이 모든 것을 이뤄낸다는 꿈 속에서 살기보다는, 내가 지능이 낮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담배는 펴도 마약은 안 하는 것처럼.



탈출구

 되도록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는데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평균 이상의 IQ는 철학-역사-철학 순서나 철학-철학-역사 순서 사이에 큰 차이가 없지만 지능이 낮으면 차이가 발생한다. 단순히 망각곡선의 원리다. 지능이 낮다면 한우물을 적당히 판 후에 다른 우물을 파야한다. 독서에서 얻는 지식도 결국은 복습이다.


 자신이 열등하다는 심리적 박탈감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선천적인 지능의 차이가 10배 100배가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학습법과 복습의 주기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다. "상대방도 같은 학습법이라면?", "상대도 새벽 3시까지 공부한다면?" 이런 사고방식을 고수하면 답이 없다. 현실 속에서 그만한 노력을 지속하는 인구는 많지 않다. 수능이라는 공통된 목적지를 갖는다면 다소 불리한 면도 있지만, 인생의 목적지가 같은 이는 적이 아닌 동료다. 우리가 걱정하는 '만약의 만약'은 현실성이 없을뿐더러 최악의 경우라도 2등 3등일 뿐이며 사회에서의 경쟁은 지능이 아닌 창의력과 운 그리고 선택이다.


 결국 열심히 하라는 말일까? 결론이 같아도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는 감각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자신이 무식했던 이유를 알아가면 논리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수정할 의지가 생긴다. 그리고 "타고난 지능이 낮은데 공부까지 안 해서"라는 핑계가 더 깔끔한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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