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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Apr 26. 2024

민희진 기자회견을 보고

- 해피엔딩은 가능할까?

반전된 여론

 나는 기자회견을 보기 전까지 민희진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요 며칠 악마적인 여론에 휩쓸려서가 아니라 뉴진스의 데뷔곡 중 하나인 '쿠키'의 가사 때문이었다. 쿠키는 영어권에서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은어로 쓰인다. 가사를 본 영어권 팬들의 반응을 보면 논란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어떻게 중학생에게 이런 노래를 부르게 하지?" 다시 말해 나는 뉴진스 데뷔 때부터 제작자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봐왔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보고 나니 '쿠키'는 실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기자회견에 임하는 민희진의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민희진의 주장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억울'이다. 하이브 계약 즈음 BTS의 여동생 그룹이며 하이브의 1호 걸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약속받았지만 아무런 조율 없이 '르세라핌'이 데뷔했다는 것이다. 이후 사내정치에 시달리며 뉴진스를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하이브는 뉴진스를 카피한 그룹 '아일릿'을 론칭했고, 이에 민희진이 불만을 제기하자 존재하지도 않는 '경영권 찬탈'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미친 여자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참고로 3그룹 모두 하이브의 자회사가 내놓은 걸그룹이다. 뉴진스는 어도어. 르세라핌은 쏘스뮤직. 아일릿은 빌리프랩 소속이다.


뉴진스(좌), 르세라핌(가운데), 아일릿(우)



모기업과 자회사

 여론을 혼란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하이브가 도입한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레이블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사업 확장과 경영 리스크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대중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모기업과 자회사 모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도어와 쏘스뮤직은 삼성전자와 삼성화재의 관계와 어떻게 다른가?"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다.


 관점이 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자회사와 계열사의 구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자회사는 모기업에게 출자를 받아서 설립한 회사이고 모기업과 종속적 관계를 지닌다. '종속'은 하이브가 어도어의 자산을 사용하는 데에 제약이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희진이 억울해하는 카피 이슈는 원칙적으로 문제가 될 수가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자회사 이야기다. 멀티레이블은 계열사? 아니면 완전히 독립적인 회사로 봐야 할까? 명쾌하게 설명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자본만 기준으로 하면 어도어는 하이브의 자회사가 맞다.



직장인의 지지

 "개같이 일했는데!" 기자회견에서 직장인의 공감을 샀던 멘트다. 직장에 불만이 없는 직원이 있을까 싶다. 속된 말로 "팽당했다."라는 상황을 겪어본 직장인은 한둘이 아니다. 내가 필요할 때에만 단물로 꼬시고 단물이 빠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것. 민희진의 상황은 팽당하는 직장인과 닮아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민희진이 대신해 주어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월급쟁이가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매력적이라는 평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만큼은 감정을 빼고 보려고 한다.


 일단 민희진은 일반적인 직장인이 아니다. 본인 말처럼 어도어에서 짤려도 1000억은 있다. 모두가 열광하고 있는 "개같이 일했는데!"의 뒷 말을 떠올려봤으면 한다. 개같이 일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것도 억울한데 일도 못하는 상사의 월급이 나보다 많기 때문에 짜증 나는 것 아닐까? 자신의 창작물이 카피당하는 상황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겠지만 자본주의 논리로 보자면 민희진은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연봉이 100억이면 개같이 일하는 게 그렇게 억울할까? 민희진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건 정말이지 납득하기가 힘들다. 경제를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소리다. 민희진의 투쟁은 월급쟁이와 대기업의 대결이 아니라 대주주와 2대주주의 갈등으로 보는 게 맞다.



하이브의 공격과 현실

 "하이브가 그랬다니 놀랍다." 나는 저 댓글을 보고 더 놀랐다. 관심분야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돌판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기업이 커지는 만큼 잡음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하이브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돈에 미쳐있다는 민희진의 말이 맞다. 어딜 가나 큰 기업은 '양아치'소리를 듣는 게 공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직하게 떼돈을 번다는 발상은 꿈같은 이야기다. 어쨌든 하이브의 자본이 만들어낸 여론 공격이 만만치 않다. 다른 건 모르겠고 '주술경영' 공격은 너무한 것 아닌가 싶다. 품위를 잃으면 명분도 잃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하이브가 제시한 감사 자료가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배임이 형사처벌로 이어지긴 어렵지만 민사로 가면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 만약 하이브가 승소한다면 친절하게 '형사가 아닌 민사로 승소'라며 보도할까? 대중들은 "민희진이 잘못했나 보다~"라고 해석할 것이다. 뜨거운 감자는 언젠가 식는다. 그리고 길고 긴 법정다툼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나의 생각

 민희진의 억울함은 공감한다. 하지만 민희진의 저항은 전장을 확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은 알겠는데 상황을 보고 있자면 '타노스'가 떠오른다. (타노스는 우주 평화를 위해서 우주의 인구 반을 소멸시키는 어벤저스의 빌런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예상치 못하게 참전하게 된 그룹은 '르세라핌'이다. 핵심에는 여전히 '아일릿'이 있으며 카톡에는 '에스파'가 등장했고 쏘스뮤직에서 해체된 '여자친구' 언급도 있었다. KPOP 전체를 저격하는 구도가 되고 있다.


타노스(좌), 에스파(가운데), 여자친구(우)


 혁명은 출혈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견뎌내야 가치가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급진적'이라는 수식어를 꺼려하는 이유는 고치려다가 망가트릴 우려가 있어서다. 전장이 걷잡을 수 없게 넓어지면 KPOP 전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팬들의 반응만 보아도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KPOP 평판이 떨어져 타회사 주식도 하락하고 남자 아이돌의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면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뉴진스를 향한 숭고함은 인정하나 너무 많은 상처를 야기하고 있다. 민희진은 뉴진스 부모의 문자를 공개하며 "부모님들에게 르세라핌이 먼저 데뷔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한 멤버의 영상통화를 언급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르세라핌 부모들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까? 아일릿의 부모들은 "카피 그룹으로 데뷔하게 될 겁니다."라고 안내를 받았을까? 그 아이들에게도 민희진 같은 존재가 있을 텐데 그들의 영상통화에는 눈물이 없을까?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이고,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라는 한마디로 수습하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다.


 나는 방시혁도 억울한 면이 있다고 본다. 경영자 입장에서 말이다. 민희진의 행동은 경영인 시각에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보상이 넉넉하니까 민희진의 창작물을 카피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방시혁의 계산 범위 안에서는 "그 정도 보상을 주었으니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컨트롤이 되지 않자 당황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식선이라면 민희진이 누리는 보상은 차고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시혁은 "억만금 줘도 나의 명예를 훼손할 수 없어."라는 민희진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민희진을 몰아내려고 마음먹은 시점에도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영자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불문율이라는 게 있다. 일반적으로 민희진 같은 경영자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힙합정신'이라며 지지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구조는 기득권에 저항하는 독립투사가 맞지만 가장 큰 문제는 '봉합'이 불가능한 지경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적과의 동침은 계속될 것이다. 혁명적인 기자회견은 존경스럽지만 해피엔딩은 힘들어 보인다. '경영권 찬탈'과 '뉴진스 독립'이 아니라면 막다른 길 투성이다. 그것이야말로 하이브가 주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해피엔딩의 다음 편은 "결국 민희진 계획대로."가 될 수 있다. 현재 여론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나는 하이브의 잘못이라고 본다.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 모기업의 책임이 크다. 민희진을 추종할 생각은 없다. 여전히 감사 리스크가 존재하며 민희진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다. 뉴진스는 하이브 덕을 분명히 보았다. 투자받을 곳은 많았을지 몰라도 하이브만큼의 후광을 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부에서 차별을 당했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말이다. 민지와 하니는 BTS의 뮤직 비디오에도 참여했다. 바이럴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하이브 소속이라는 사실 자체가 홍보였다. 어도어가 하이브의 자본으로 탄생했다는 점도 존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뉴진스 멤버가 고립되고 있지 않은지 세심하게 지켜봐 주길 바란다. 어른들이 다투는데 아이들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뉴진스는 챌린지도 많이 하지 않으며 외부활동을 통한 인맥 확보도 부족해 보인다. 은퇴하고 30대가 된 아이돌 중에는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진정한 엄마라면 언젠가 자신의 명예를 희생할 각오도 해야 할 것이다. 방시혁도 수장다운 면모를 보여야 한다. 자신들이 아이들을 다루는 사업을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하이브가 고등학교였다면 방시혁 교장과 민희진 교감은 파면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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