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남의 의식구조

- 정답이 공개된 시험 -

by 공황돼지

매너 있는 남성은 여성을 대할 때 정중과 배려가 묻어난다. 그런데 조금 불편한 사실이 있다. 진짜 매너와 가짜 매너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매너 있는 행동은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필수 덕목이다. 레스토랑에서 의자 빼주기. 차도 쪽으로 걷기. 자동차 문 열어주기. 여성과 사진 찍을 때 최대한 신체 접촉을 줄이는 '매너손'도 알려진 행동이다. 이것들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도 없다. 알려진 매너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쁜 여성과 걸을 때는 차도 쪽, 못생긴 여성과 걸을 때는 최대한 인도로 밀착하는 남자는 생각보다 많다.

연애판에 등장하는 매너는 대부분 호감의 신호다. 때문에 누군가는 매너를 학습한다. 당연히 호감을 잃은 여성에게는 매너를 제공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랑 걸을 때 항상 차도 쪽으로 걷고 밤길 위험하다며 챙겨줬는데 요즘은 왜 안 그래? 애정이 식은 거야?" 나는 이런 대화에 의문을 느낀다. 매너가 몸에 배어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변하지 않아야 한다.


애정과 매너가 비례한다는 말은 착각이다. 상대를 소중해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자세는 '애정'이지 매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런 말이 나온 이유는 애정을 매너로 착각했거나, 매너를 애정으로 오해해서다. 그들의 진짜 매너는 애정이 필요하지 않은 타인들을 대하는 행동에서 나타난다.

늦은 시각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앞에 걷고 있던 여성이 힐끔힐끔 쳐다보는듯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담배를 다 태울 때 즈음 여성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야기를 들은 남성 지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나는 그럴 때 짜증 나더라.", "뭐 하러 신경 써 남인데.",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좀 떨어져 주는 게 매너지.", "이쁘냐 안 이쁘냐가 중요함." 그런데 여성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나를 매너남이라 치켜세웠다.

앞쪽에서 걷고 있던 여성은 나를 치한이나 변태로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시간과 장소를 고려하면 의심받을만했다. 어쨌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담배도 당겼다. 비가 오고 있었다면 걸음을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이 10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이상형이었다면 뒤쫓아가 연락처를 물어봤을 수도 있다. 이게 과연 매너남일까.

매너를 시험에 비유해 보자. 칠판에 정답을 공개한 후 "답을 볼 사람은 보고 양심껏 풀 사람은 그냥 풀어."라는 시험이 있다. 어떤 100점이 진짜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알려진 매너는 공개된 정답과 다르지 않다. 매너는 '상대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작은 노력'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차도 쪽으로 걷지만 유사시 여성을 방패로 사용하는 남자도 있다. 인도 쪽으로 걷지만 목숨 걸고 여성을 지켜주는 남성도 있다. 어쨌든 사고가 나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래도 차도 쪽으로 걷는 남자가 좋은 남자일 확률이 높잖아?"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차도 쪽 남자나 인도 쪽 남자나 자신을 감싸줄 확률은 50% 일뿐이다. 차도 쪽 남자만 선호하는 것은 좋은 남성을 만날 확률을 50% 낮추는 선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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