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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May 09. 2019

[나의 지극히 사적인 전시회 답사기] ➉

데이비드 호크의 <나의 부모님>

 이런 애인이 또 있을까. 휴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 보면, 제작이 끝날 무렵에는 출연자와 사랑에 빠진 PD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촬영 내내 다큐멘터리 주인공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의 말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출연자에게 향하게 한다. 그렇게 몇 시간, 며칠을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쓰며 보내면, ‘아, 기 빨린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다가도 편집실에서 그 사람의 작은 표정 하나하나와 그의 인터뷰를 반복해 듣다 보면 정이 들고, 사랑하게 된다. 방송 후 ‘어쩜 나보다도 PD양 반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면, 으쓱해진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부모님.     


 연출을 한 지 십 수 년 동안, 많은 출연자들을 만나 그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정작 부모님의 전화는 성의있게 받아본 적이 있는가. 웃으면서 상냥하게 응대한 적이 있는가. 출연자 분을 인터뷰하고 촬영을 하면서 다짐을 했었다. 언젠가는 캠코더를 사서 나의 부모님에 대한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이제는 카메라를 구매할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면 되고, 전문 편집기가 없어도 될 정도로 편집 툴이 많아졌지만, 부모님은 내가 제작할 프로그램의 주인공 우선 순위에서 아직까지도 계속 밀리고 있다.     


 창조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한 번 쯤은 자신들의 부모를 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걸까?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는 제목까지 ‘나의 부모님’이라는 작품이 있다. 가로, 세로 각각 2미터가 조금 못되는 캔버스에 꽉 찬 두 노인의 모습은 실제 사람이 앉아있는 크기와 비슷하다. 그림 왼쪽의 어머니는 정면을 바라보고 관람객과 눈을 맞춘다. 꼿꼿한 자세가 우아하고 교양있는 귀부인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깨가 굽었고, 고개는 책 속으로 들어갈 듯 숙인 상태이다. 아버지의 얼굴은 책을 들여다보느라, 관객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 포즈이다. 이 그림을 보고 어찌나 나의 부모님 모습과 겹치던지. 원래 이 그림에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의 모습을 함께 그려 넣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그릴지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가구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있는 마장센은 담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부모 옆에 자신의 모습을 세우는 그림은 결국 포기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나의 부모님’, 1977, 183Cm*183Cm>

 

부모님 인터뷰 프로젝트.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몇 년 전, 한 지인이 일본에서 본 프로그램을 얘기해줬었다. 연예인이 자신의 부모가 살아온 과거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용인데, 일반인의 역사를 담지만 결국에는 일본의 현대사를 얘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놀랐다고 했다. 제목도, 장르도, 형식에 대한 설명도 없이 딱 그렇게만 설명을 들은 터였다. 이 프로그램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현대사라는 거시적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부모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지나고 나면 듣지 못할 개인의 역사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듣지 못하면, 영원히 기록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개인사도 허투루 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른 PD는 몇 년을 미루던 인터뷰를 어버이날이 되어서야 겨우 물어본다. 가장 좋아하는 색깔, 음식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던지는 질문. ‘다시 태어나면 어떤 공부를 해보고 싶고, 어떤 직업을 해보고 싶어요?’ 사실 인터뷰 준비를 제대로 안 해가서 마구 던지는 질문인다. 그런데 부모의 대답에 눈물이 갑자기 왈칵 흐른다. 영어영문학 공부를 해보고 싶고, 미술을 더 배워보고 싶다는 답변이었을 뿐이었는데, 두 개의 안구가 뜨거워진다. 주책이다. 식사 자리에서 인터뷰어가 울어버리는 바람에 질문은 여기서 멈추고 만다.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나도 포기다. 다음에, 다시 여유가 생길 때 제대로 촬영하면서 인터뷰해야지. 스마트폰으로 당장 촬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PD의 부모는 출연자 순서에서 뒤로 밀리고 만다.     


 최근 엄마 자서전, 아빠 자서전을 만드는 작은 프로젝트들이 젊은 개인들 중심으로 소소하게 일어나고 있다. 비록 역사책이나 기사에 기록될 만큼 대단한 스펙을 갖고 있는 부모님들이 아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현재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나보다. 게으른 PD보다 부지런하고 실행력 있는 젊은 효녀효자들이 많아서 뿌듯하다. 이런, 그들은 보니 나는 또 말만 앞선 게으른 딸이 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깨가 굽은 모습이 그림 속 아버지 모습과 비슷하다. 필자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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