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인생을 담은 그림 - 곽분양행락도
PD들이 프로그램 첫 방송을 앞두고 사주를 보러가는 것은 아무리 5G시대라 해도 변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사주로 시작해서 결국엔 PD 개인의 사주팔자를 상담하고 오는 레파토리 역시 꾸준하다. 아! 정말 잘 살고 싶다. 그래서 몸에 지니면 좋다는 색깔의 지갑도 들고 다녀보고, 궁합이 잘 맞는다는 성씨를 갖은 사람은 괜히 한 번 더 눈여겨 본다.
길상의 상징을 새겨 넣은 고미술품은 미술시장에서 가치가 더 높다. 이들 중에서도 최고는 바로 당나라의 장수 ‘곽분양(곽자의)’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이다. 그림에 따라 <곽분양행락도><곽자의축수도><곽자의축하도> 등 이름이 다양한데, 곽분양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손님들과 백 여명 가까운 손주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평화롭게 표현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곽자의는 중국 당나라 때의 장수이다. 안사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자 황제는 곽자의에게 ‘분양왕’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그래서 그가 등장하는 그림에는 ‘곽분양’이라는 말이 붙는다. 곽분양은 그 옛날에 85세까지 살았고, 여덟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낳았다. 그 손주만 해도 백 여명에 가까워 손주들 이름을 외우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딸 중 한명은 황후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고 하니, 참으로 팔자 좋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만복의 상징이라고 여겨진 곽분양은 그림이나 소설로 만들어져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필자는 운 좋게도 이 그림을 두 번 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2018년 서울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조선, 병풍의 나라’전에서였다. <곽분양행락도8폭병풍>에는 곽분양의 생일잔치 모습을 그렸는데, 저택에서 연회를 하는 모습이나 정원과 연못 주변에서 노는 한가로운 모습이 영락없는 태평성대요, 요즘으로 치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친구와 가족들을 불러 고기를 구워먹는 여유있는 풍경이 연상된다.
또 한 번 곽분양 그림은 마주한 것은 올해 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였다. 조선 최초의 외국계 회사인 세창양행 회장이었던 하인리히 마이어가 수집한 10폭 병풍이다. 조선에서 무역을 하며 조선의 그림들을 모았다가 독일로 돌아간 후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 기증을 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복원 작업 때문에 잠깐 한국에 온 <곽분양행락도10폭병풍>을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독일인도 알아본 운수대통의 곽분양은 조선 후기에 최고 인기 인물이었나 보다. 조선 후기 가장 큰 서화 시장이었던 종로와 을지로 사이 청계천 광통교에서 곽분양행락도를 사고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조선 왕실과 민간에서도 혼례 때 병풍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품들이 많아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파악된 소장품으로는 40여점 만 남아 있다고 하니 이제야 <곽분양행락도> 실물을 본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에스콰이어> 잡지는 미술을 소비하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자신의 고상한 취미를 알리기 위해서, 재테크 수단으로 미술을 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기복의 목적으로 그림을 걸어 놓는 것은 빼먹은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지만 요즘 따라 왜 이리 주변에 고민과 걱정이 많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이 들려오는지. 근심 없이 부모 자식과 넓은 집 마당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고기를 구우며 술이라도 한잔 기울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곽분양처럼 인생 후반전이라도 잘 살고 싶은 마음에 <곽분양행락도>가 그려진 굿즈라도 사서 집에 걸어 놓고 싶다. 기회가 뵈면 한 번 더 실물을 보고 싶은 그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