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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Jun 26. 2019

[지극히 사적인 전시회 답사기](12)

팔자 좋은 인생을 담은 그림 - 곽분양행락도

  PD들이 프로그램 첫 방송을 앞두고 사주를 보러가는 것은 아무리 5G시대라 해도 변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사주로 시작해서 결국엔 PD 개인의 사주팔자를 상담하고 오는 레파토리 역시 꾸준하다. 아! 정말 잘 살고 싶다. 그래서 몸에 지니면 좋다는 색깔의 지갑도 들고 다녀보고, 궁합이 잘 맞는다는 성씨를 갖은 사람은 괜히 한 번 더 눈여겨 본다.  


 길상의 상징을 새겨 넣은 고미술품은 미술시장에서 가치가 더 높다. 이들 중에서도 최고는  바로 당나라의 장수 ‘곽분양(곽자의)’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이다. 그림에 따라 <곽분양행락도><곽자의축수도><곽자의축하도> 등 이름이 다양한데, 곽분양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손님들과 백 여명 가까운 손주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평화롭게 표현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곽자의는 중국 당나라 때의 장수이다. 안사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자 황제는 곽자의에게 ‘분양왕’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그래서 그가 등장하는 그림에는 ‘곽분양’이라는 말이 붙는다.  곽분양은 그 옛날에 85세까지 살았고, 여덟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낳았다. 그 손주만 해도 백 여명에 가까워 손주들 이름을 외우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딸 중 한명은 황후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고 하니, 참으로 팔자 좋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만복의 상징이라고 여겨진 곽분양은 그림이나 소설로 만들어져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필자는 운 좋게도 이 그림을 두 번 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2018년 서울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조선, 병풍의 나라’전에서였다. <곽분양행락도8폭병풍>에는 곽분양의 생일잔치 모습을 그렸는데, 저택에서 연회를 하는 모습이나 정원과 연못 주변에서 노는 한가로운 모습이 영락없는 태평성대요, 요즘으로 치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친구와 가족들을 불러 고기를 구워먹는 여유있는 풍경이 연상된다.      

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이 노년의 곽분양


 또 한 번 곽분양 그림은 마주한 것은 올해 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였다. 조선 최초의 외국계 회사인 세창양행 회장이었던 하인리히 마이어가 수집한 10폭 병풍이다. 조선에서 무역을 하며 조선의 그림들을 모았다가 독일로 돌아간 후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 기증을 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복원 작업 때문에 잠깐 한국에 온 <곽분양행락도10폭병풍>을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독일인도 알아본 운수대통의 곽분양은 조선 후기에 최고 인기 인물이었나 보다. 조선 후기  가장 큰 서화 시장이었던 종로와 을지로 사이 청계천 광통교에서 곽분양행락도를 사고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조선 왕실과 민간에서도 혼례 때 병풍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품들이 많아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파악된 소장품으로는 40여점 만 남아 있다고 하니 이제야 <곽분양행락도> 실물을 본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에스콰이어> 잡지는 미술을 소비하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자신의 고상한 취미를 알리기 위해서, 재테크 수단으로 미술을 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기복의 목적으로 그림을 걸어 놓는 것은 빼먹은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지만 요즘 따라 왜 이리 주변에 고민과 걱정이 많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이 들려오는지. 근심 없이 부모 자식과 넓은 집 마당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고기를 구우며 술이라도 한잔 기울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곽분양처럼 인생 후반전이라도 잘 살고 싶은 마음에 <곽분양행락도>가 그려진 굿즈라도 사서 집에 걸어 놓고 싶다. 기회가 뵈면 한 번 더 실물을 보고 싶은 그림이다. 

<곽분양행락도> 중 일부로 손주들이 노는 모습을 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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