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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 베드로 Nov 08. 2020

욕심의 행로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코로나의 광풍이 우리 생활의 밀접한 부분까지 접근해오며 온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생존의 문제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때로는 공포스럽기조차하다. 이 모든 것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패악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와바 이러스의 평화스러운 공존의 장을 사람들이 깨뜨렸고, 그 바탕 위에 탐욕스러운 인간의 욕망이 더해짐으로써, 오늘의 결과를 초래했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도대체 인간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이러한 문제가  우리 모두의 '불필요한 과욕'이 낳은 파생물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몇 달 전 나온 신문기사에서 이문제와는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으나, 기본적인 맥락에서 그 Motiv가 거의 같은 한 기사를 접했다. 바로 S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이다. 다 알다시피 이 사건은, 딸들의 성적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그릇된 부성애가 저지른 부정시험 사건이었는데 , 1,2심을 거쳐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이르게 되었고, 그들 부녀들이 그토록 주장했던'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은 인정되지 않았으며, 결국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그들이 저지른 모든 일들은 명백한 범죄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바라본 근시안적인 인간의 민낯의 뿌리가 드러나는듯했고, 우리의 감춰져 있던 치부가 더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지난 세월을 지나오며, 행하였던 모든 일에 대하여 잘했다는 것보다는 후회스럽고 잘하지 못했다는 회의감이 들 때가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황혼 녘에 서서 뒤돌아보며, 통한의 마음을 가져본들 무슨 소용이 있어 리오 마는, 다만 축적된 경험을 누군가에게라도 알려서, 나와 같은 회한이 되풀이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늙고 힘없는 올드보이의 말을 들어주는 이없어니 그냥 입만 곱송 거리고 있을 뿐이다.


 살아온 연륜이 있는지라 웬만하게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추론도 가능하고 훈수 또한 할 수 있음에도, 데꾼한 눈에 머리털은 건성드뭇하고 말은 헛김이 새면서, 발음 또한 시원찮으니 그 말을 누가 귀담아듣기나 하겠는가? 이래서 노인들끼리 모이는 곳에는 항상 시끄럽고, 요란하기 마련인가 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꽤나 많은 변곡점들을 거치며, 각자의 역사를 그렇게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슬기롭게, 때로는 힘겹게 그 변곡점들을 용 하게 넘기면서 자신의 디딤돌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나름대로의 삶의 노하우가 형성되고, 그것은 자신의 무형자산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러한 순간순간들이 모여 한때가 되고 그 한때들이 모이고모여, 나의 시대와 생애로 이어지고 있다.


순간의 실수가 모이면 어느 때에서는 훌륭한 경험의 노하우로 연결되는가 하면, 어느 때의 실수는 다음 때의 삶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지난날을 후회하면서도 또다시 반복되는 우리들의,  실수와 과오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의 진보를 멈추면서 와신상담의 기회가 되지만, 얻어지는 순간의 이익에 맛 들이다 보면, 그릇된 욕망에서 게  벗어날 수도 없을 뿐더러  만연되는 또 다른 악의 바이러스에  감염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약진은 보통의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보와 변이를 거듭한다. 그 출발은 언제나 과도한 인간의 욕심에서 대부분 비롯된다 할 것이다.

성경에도'욕심이 죄악을 잉태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딸들을 향한 아버지의 배려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어떤 아버진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인들 하지 않으랴마는, 아버지가 생각한 딸들에 대한 관심은, 결국은 진실이 결여되고 거짓으로 포장된 것임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왜곡되고 구부러진 사랑이 진실과 사랑인양 행세하는, 이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독선과 반칙이 우리 주위에 려있었음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의 과욕이 빚어낸 결과는 마침내 그들 자신들을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공정한 기회조차 앗아가 버린 사회적 범죄라 할 것이다. 자유경쟁체재에서 필요불가결의 원칙인 선의의 경쟁조차도 와해시키고 말았고, 그것이 어느 특권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사건의 fact는 그들 부녀만이 알고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직까지 살아갈 날들이 많은 자식들을 위해 그 아버지는, 욕심의 꼬리를 과감히 잘라내 버리고 맑은 영혼으로 딸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진실한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해야 하니까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허구의 이익과 승리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먼길을 쉼 없이 그리고 꾸역꾸역 달려,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수많은 인생 마라토너들의 값진 땀방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들은 이 기회를 통하여 깊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비 온 후 더 굳어지는 땅덩이처럼, 어려운시기를 거친 후 우리는 항상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corona19 virus의 생소한 경험은 어떤 뜻밖의 깨우침을 우리에게 선사해줄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던 시작은 이미 되었고, 그 끝 또한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광풍의 끝자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message는 과연 무엇인지를, 이 기회를 통하여 깊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20,3월, 광풍 지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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