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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Sep 07. 2020

당분간은 행복하지 않을래

 우리나라의 '눈치 문화'는 뜻만 보면 '이타적인 정서'를 전제하는 단어 같지만, 사실 우리들을 괴롭힐 때가 더 많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전제된 '눈치의 기본선'이 있어서, 그것을 기준으로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되거나 '센스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그런 '눈치'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졌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취업을 했기 때문인데, 그 어디에도 쉽게 자랑할 수 없었고, 또 입사 이후 쌓이는 피로감에 대해서 쉽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취업을 하지 못 한 친구가 힘드냐고 물어보거나,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항상 '그냥 그렇다'고 얼버무리며 대답을 피하고 대화를 돌렸다.


사실 나는 요즘 비교적으로 무척이나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회사를 다녀오면 진이 빠져 9시면 바로 잠에 들 정도로 피곤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 만큼 주위 친구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게 없다. 나도 얼마 전까지 취업을 하지 못 하고 힘들어하던 시기를 깊게 체감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말을 줄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센스 좋은 사람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누구에게든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절대 현명한 해결책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날 좋게 봐주기를 바라는 내 성격에 의해 만들어진 결론일 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눈치' 뿐만 아니라 '생색', '오글거림', '진지충'과 같은 단어들은 우리들의 감정을 통제하는 바리케이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바리케이드가 점점 조여온달까? '눈치 없는 사람', '생색내는 사람'이 되기는 점점 쉬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더 많은 신조어들이 우리의 더 많은 것들을 가로막을 것만 같은 예감도 든다.


어쨌든 나는 당분간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기로 했다. 미필적 고의로 친구들의 마음을 쿡 찔러버릴까 봐. 나의 주위 친구들이 행복한 일들이 생겨서 나에게 자랑을 먼저 해올 때, 그때는 겉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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