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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Apr 05. 2022

갈 데도 없으면서 서성였다

나는 얼마나 덧없는 발자국을 남겨왔을까.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서울을 향했다가, 아차,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약속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기에도 애매하고, 가만히 서있자니 10초에 한 번씩 시계를 바라보니 실패. 담배 하나를 태우고 무작정 앞에 펼쳐진 인도에 발자국을 갖다 대며 걸었다. 분명 어딘가를 향하지는 않았다. 그냥, 시간이 남으니 걷는 거지. 10분도 걷지 않았는데 막다른 길이 나왔다. 그대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세어보며 그대로 다시 걸었다. 조금 걸으니 원래 내가 멍 때리고 있던 그곳에 나는 또 서 있었다.


나는 서성였다. 갈 데도 없으면서. 이내 목적지 없는 밋밋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시간을 태웠다. 걷다 보니 홀연 나에게 의구심이 생겼다. 갈 데도 없으면서 서성이는 건 발자국만이 아니지 않나. 막다른 길을 만나 다시 방향을 틀어 돌아왔던 것처럼, 어쩌면 나는 10년 전에 내가 서있던 그곳에 다시 서있는 것 같았다. 어디를 분명 돌아다니긴 했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의미 없이 방향을 바꾸며 걷다 보니 원래 있던 자리에 서 있다.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찍은 족적들의 의미를 헤아려 본다. 저 발자국은 내가 대학교에 갔을 때 찍은 거고, 저 발자국은 내가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찍은 건데. 아, 퇴사했으니 발자국이 두 줄이네. 심지어 찍히다 만 저 발자국은 또 어떻고. 의미 있는 발자국들이 보이지 않고 그저 비가 오면 쉽사리 지워질, 너무나도 여린 발자국들이었다.


'허송세월'이라는 짧은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누구나 하지만, 누구나 한다는 생각 하나로 세월을 보내주고 나니 1년이, 5년이, 10년이, 나의 청춘이, 어느새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내가 20대의 어린 나이임에 감사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지만, 감사한 만큼 나는 충분히 열심히 하지 못했다. 어느 하나에 진심을 태워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나는 '덧없다'는 말을 많이 쓴다. '보람이나 쓸모가 없다'는 충격적인 의미를 가진 것 치고는 어감이 부드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뭐든지 '척' 하는 정도로만 해왔던 내 삶을 포장해주는 것 같아서. 이제 덧없다는 말을 그만 써야 할 것 같다. '덧있는' 행로를 만들어나가야만 한다. 남은 내 20대, 30대의 빛나는 시기를 그저 친구를 기다리는 1시간처럼 허무하게 태워버릴 수는 없으니.


이제 내가 찍어나가야 할 발자국은 어떨까. 이제는 훨씬 더 힘차게 바닥을 내리찍어 깊게 남겨야만 하겠다. 비가 쏟아져도 지워지지 않게끔. 아니면, 시멘트 바닥이 미처 굳기 전에 발을 내디뎌 영원한 발자국을 남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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