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없는 부지런함.
부자란 무엇일까? 10억이 있을 때, 100억이 있을 때? 요즘은 자금의 액수로 부자의 기준선을 가르지 않는다. 자본 이득과 근로 소득의 균형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진다. 근로 소득은 말 그대로 근로를 통해 얻는 사업 소득, 근로 소득 등을 의미하며, 자본 소득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본 시장에 투자하여 얻는 손익금을 의미한다. 투자가 이제는 모든 국민에게 친근한 개념이 된 현재, 자본 소득이 근로 소득을 앞지르는 순간에 우리는 '부자가 됐다'고 한다.
'자본 소득>근로 소득'의 공식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으려면, 즉 부자가 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물론 투자에 필요한 초기 자금(시드 머니, Seed Money)을 증식시켜야 한다. 근로 소득을 통해 쌓아 가는 초기 자금은 조금의 자본 소득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근로 소득 99, 자본 소득 1에서 시작하는 소득 계획은 점점 98:2, 90:10, 70:30처럼 양 소득 간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때 시드 머니를 증식시키는 것은 절약과 저축의 산물일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제로 금리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겹도록 들었듯, 코로나 금융 위기를 근간으로 각국의 기준 금리는 제로(0)를 향했다. 즉, 우리가 은행에 저축하여 받을 수 있는 예금 금리가 티끌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각국이 기준 금리를 인상시키면 저축을 통해 시드 머니를 마련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각 은행은 예대마진(대출 금리-예금 금이) 폭을 키우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실물 경제가 망가져 감에도 은행들의 실적이 활황을 띠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 있다. 즉, 기준 금리가 높아져봤자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 금리를 많이 주기보다 고객들에게 더 많은 대출 금리를 부담시킨다는 것이다.
'절약의 역설'이라는 용어가 2020년대 떠오르고 있다. 커피 한 잔 아껴서, 배달 음식 줄이면서, 국산 대신 수입산 고기 먹으면서 꼭 쥐고 있는 현금은 고작 물가 상승률에, 대출 금리 상승에 힘 없이 증발한다. 우리가 가만히 쥐고 있는 돈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구매력이 감소하고 있다. 부지런하게 절약하며 돈을 모았는데 오히려 점점 가난해지는 역설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러한 절약의 역설에 준거한다. 자산 인플레이션이란 주식, 부동산 등의 투자 상품의 가격이 실제 가치에 비해 과대 상승폭을 보이는, 즉 거품이 끼는 상태다. 절약의 무용성을 인지한 국민들이 하나둘 늘어감에 따라 예금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예금에서 인출된 돈은 모두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향하며 자산 시장이 활황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코스피가 3,000p를 향할 때 거지가 된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와는 달리, 코스피 상승폭을 잘 캐치하여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누린 사람들도 많다. 부의 효과란 보유 주식 또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부자가 된 느낌을 받아 소비를 급격히 늘리는 효과를 말한다.
앞으로 3년 간, 10년 간, '금융 위기 주기설'에 따라 각종 위기는 거듭 찾아올 것이고,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벼락 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 계속 투자 지식을 쌓아놓아야 한다. '절약의 역설'에 휘말리는 안타까운 부지런함에 무릎 꿇지 않기를 바란다.